서울 종로구 관훈동 18번지. 일제강점기 ‘문화재 지킴이’로 불렸던 간송 전형필이 고서화를 수집하던 본거지 한남서림(翰南書林)이 있던 역사적인 자리다. 일제의 조선어학회 탄압으로 민족문화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한 1943년, 간송이 기와집 10채 값을 주고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을 이곳에서 사들였다. 지금은 헐려 없어져 전통찻집이 들어선 옛 건물 터(국민일보 7월 25일자)에 이를 알리는 역사문화표석이 설치된다.
2일 서울시와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개최된 서울시 역사문화표석 심의위원회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신청한 한남서림에 대한 표석 설치 안건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달 중 찻집 ‘소슬다원’이 들어선 자리 주변에 ‘한남서림 터 역사문화표석’이 세워진다.
그동안 문화계에서 표석 설치 여론이 높았던(국민일보 7월 25일자 29면 참조) 한남서림은 1910년을 전후해 중인 출신 서적상 백두용(1872~1935)이 개업한 근대기 고서점 중 하나다. 다른 서점들이 신구서적을 모두 취급했던 것과 달리 한남서림은 고서를 주로 다뤘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일본 유학에서 귀국한 뒤 문화재 수집에 뜻을 둔 전형필도 이런 점을 높이 사 1930년대 들어 경영이 어려워진 한남서림을 후원했다. 백두용이 사망한 이후에는 아예 인수했고, 골동품상인 이순황에게 경영을 맡기며 1930년대 중반부터 고서화 수집 활동을 본격화했다. 진경산수의 대가 정선의 화첩인 ‘해악전신첩’(보물 제1949호), 풍속화가 신윤복의 화첩인 ‘혜원전신첩’(국보 제134호)이 여기서 거래됐다.
강원대 이민희 교수는 “한남서림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고서를 중심으로 취급하며, 다른 서점들이 관심을 두지 않던 방각본 소설(활자본이 등장하기 전 목판으로 대량 생산한 소설)도 문화자산이라며 일부러 찍어냈다”면서 “간송이 한남서림을 인수한 것도 그런 정신이 서로 통해서였다”고 말했다. 이어 “학계에서 진행된 많은 연구가 한남서림에서 출간된 자료들에 빚지고 있다. ‘구운몽’ 등 방각본 소설 일체, 한의학 관련 서적 ‘방약합편’, 서예계에서 중시되는 ‘해동역대명가필보’ 등이 그런 예”라고 부연했다.
역사문화표석은 서울시가 사라진 문화유산 터나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기념하기 위해 심의를 통해 관련 내용을 담은 표석을 설치하는 제도다.
서점 겸 출판사 ‘회동서관 터’, 우리나라 첫 극장인 원각사가 있던 ‘원각사 터’ 등 총 261개가 서울시 전역에 산재해 있다.
문화재청장, 서울시장, 종로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표석 제막식도 추진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