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랑 같이 살고 싶어요. 보육원에서 데려가려면 어떻게 노력하면 되겠습니까.”
다섯살짜리 의붓아들을 잔혹하게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구속된 A씨(26·사진)가 4개월 전 인천아동전문보호기관을 찾아와 한 말이다.
A씨는 2년 전 같은 아이와 둘째 의붓아들(당시 2세)을 학대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이로 인해 두 아이는 친엄마 B씨(24)로부터 떨어져 보육원에 맡겨져야 했다. 아동보호법상 학대당한 아이는 가해자로부터의 격리를 동반한 보호 명령이 내려지기 때문이었다.
두 형제를 데려가겠다고 찾아온 계부 A씨는 보호기관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매번 1~2시간씩 진행되는 대면상담을 12차례나 받았고, 양육 및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부모 교육도 7번이나 이수했다는 것이다. 보호기관 관계자는 “한번은 상담 중에 영아인 셋째 아이가 심하게 울었는데, 아버지가 참을성 있게 대하더라.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3개월간 지켜본 입장에서 A씨가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것 같았다”면서 “(교육에 대한) 협조도 참 잘했다”고 기억했다. 또 다른 보육교사는 “마치 순한 양처럼 우리 말을 잘 따랐다”고 했다.
이 보호기관은 계부의 집을 직접 찾아가 집안 분위기와 보육 환경도 살폈다. ‘가정방문’을 통해 두 의붓아들이 학대당하지 않을지 결정을 내리기 위한 마지막 절차였다.
A씨는 지난 8월 30일 보호기간이 끝나자마자 의붓아들 형제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찾아왔다. 보호기관은 바뀐 행실과 태도를 보고 보호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때부터 A씨의 인면수심(人面獸心)은 다시 시작됐다. 2년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온 두 아이에게 가해진 것은 그 전보다 더 심한 폭행이었다.
아내 B씨를 감시하기 위해 스스로 설치한 CCVT에 찍힌 그의 행동은 극악무도한 폭군이었다. 첫째 의붓아들의 손과 발을 몸 뒤로 묶어 활처럼 휘게 만들어놓고 목검으로 때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으며, 발로 차고 쓰러진 아이를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치기까지 했다. 친모 B씨는 “아이를 20시간 이상 묶어놨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CCTV 영상은 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30일까지 한 달치 분량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호기관에 맡겨졌던 자녀를 데려가 다시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은 3년 전에도 인천에서 발생했다. 4살 된 딸을 40시간가량 굶긴 뒤 딸이 쓰러지자 꾀병을 부린다며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 엄마가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재판에 회부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부모로부터 학대 피해를 당한 아동이 재차 같은 범죄에 노출되는 가장 큰 원인은 학대 피해를 당한 아동이 가정으로 돌아간 뒤에는 가해자인 부모가 상담 또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강제조항이 아동보호법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아동보호 문제 전문가는 “이번 사건처럼 친권자가 보호기관 교육 때와 전혀 다르게 행동할 경우 분명한 ‘치외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면서 “아동보호법을 좀더 강화하고, 폭력 성향이 농후한 부모로부터 아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개입 조항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경찰은 계부 A씨뿐 아니라 친모 B씨에 대해서도 아동학대 방임 혐의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다. B씨는 2017년 사건 때도 아동복지법상 방임 혐의로 입건된 바 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