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국회 앞 도로와 송파 석촌호수 옆 도로 등에서 크고 작은 지반침하가 발생했다. 국민일보의 최초 보도(2014년 6월 30일자 석촌호수 옆 도로 ‘의문의 구덩이’) 이후 국내 언론들은 외국의 대규모 ‘싱크홀’ 사례와 비교해 이같은 현상을 집중 보도했으며 8월 5일 석촌지하차도에서 대형 지반침하와 지하의 숨은 빈 공간이 발견되자 ‘도로 안전’은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이때부터 지반침하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도시의 새로운 재난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서울시 도로관리 대책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계기가 됐다.
현재 서울 도로는 첫 포장을 시작한 지 87년이 됐으며 평균 나이도 40년이 훌쩍 넘어 노후화의 길로 들어섰다. 말끔해 보이는 피부 아래 동맥·정맥·모세혈관과 각종 신경, 림프관 등이 자리하고 있듯 평탄해 보이는 도로 속에는 상·하수도관, 전기통신시설 등 각종 시설물이 매설돼 있다. 이 시설물의 노후화가 지반침하의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집중호우 등 기후변화의 심화, 교통량 및 중차량 증가 등이 더해지면서 지반침하가 가속화하고 있다.
사람이 조기진단을 통해 질병 유무를 판단하고 치료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듯이 도로안전을 위한 최선의 길은 예방에 있다. 서울시는 지반침하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는 지하의 빈 공간을 선제적으로 찾아내고 복구해 함몰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는 ‘지반침하 예방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2015년부터 하반기 부터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서울 광진구 자양로 구의역~건대입구역 구간에서 진행된 지반침하 예방활동 현장을 찾았다. 첨단 탐사장비인 차량형 멀티 GPR(Ground Penetrating Radar·지표투과레이더)로 도로하부 공동(空洞·빈 공간) 조사를 하는 것이다. 차량 밑에 부착된 GPR 안테나에서 레이더를 쏴서 반사되는 신호를 받아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도로를 스캔하면서 땅 속 상태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여러대의 카메라로 찍은 노면영상과 주변영상을 GPR 안테나가 스캔한 데이터와 연동해 공동 위치를 찾아낸다. 이동하는 차량내 모니터 상단에는 탐사영상 종단면과 횡단면이, 하단에는 노면영상이 전개된다. 볼펜 24자루가 7.5㎝ 간격으로 도로 위에 놓여서 레이더를 전파해 촘촘하게 스캔하는 식이다.
멀티 GPR로 도로 하부 상태를 보여주는 데이터를 모은 뒤 전용 프로그램으로 이상 유무를 분석한다. 이어 작업자가 공동 위치를 쉽게 특정할 수 있도록 분석 공동조사서를 작성한다. 조사서에는 위도와 경도, 차선, 지점 등 공동으로 의심되는 위치와 토피, 길이와 폭, 바닥깊이 등 공동 추정 규모가 표시된다. 작업자는 공동조사서 내용을 토대로 핸드 GPR을 활용해 천공할 위치를 확인한 뒤 사방에 점을 찍고 가운데 ○ 표시를 한다. 조사서에 공동이 있는 것으로 표시됐더라도 현장에서 공동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면 바닥을 뚫지 않는다. 현장에서 공동이 존재하는 것으로 최종 확인돼야 천공을 하고 그 틈을 통해 직경 5㎝ 내시경 카메라를 넣어 내부 단면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한다. 이는 핀 포인트 방식으로 필요한 부분만 작게 구멍을 꿇는 것이어서 굴착방식보다 효율적이다. 교통 통제를 안해도 되고 소음도 적고 비용도 6~7배 절감된다. 내시경 촬영을 통해 공동 규모가 확인되면 유동성채움재로 즉시 복구하고 천공홀을 포장하면 작업이 끝난다.
중점 탐사 대상은 50년 이상 노후 하수관, 지하철 개착구간, 사질 등 연약지반이다. 특히 굴착복구 후 오래된 도로는 빗물의 영향이나 차량 및 지하철 통행으로 발생하는 진동하중에 의한 장기간 압밀침하 등으로 공동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관심있게 들여다본다.
서울시는 올해 8월말 기준으로 1574㎞ 도로에서 GPR 탐사를 진행해 3516개 공동을 발견했고 3495개를 복구했다.
서울시의 지반침하 예방시스템은 도로안전을 확보하는 것외에 장비와 기술을 국산화하고, 전국 주요 도시로 확대될 수 있는 표준을 만들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2014년말 일본 업체 ‘지오서치’가 서울에서 무상으로 도로 탐사를 시연한 후 서울시는 자체 분석 기술 확보 및 국내 상황에 맞는 장비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그 결과 장비 국산화에 성공해 2015년 하반기부터 사업화에 착수했고 현재 4개 중소업체가 서울시 위탁으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어 2017년 부산시가 서울시의 지반침하 예방시스템을 벤치마킹해 차량형 GPR를 운영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서울시의 지반침하 관리대책을 전국에 우수사례로 전파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5만2697㎞ 도로에 묻혀있는 전기 통신 가스 등 지하시설물의 관리주체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안전사고 예방 및 재난발생시 신속한 대응·복구를 위한 ‘지하시설물 안전관리 협의체’를 구성해 최근 첫 회의를 가졌다.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수자원공사, 전기안전공사, 가스안전공사, ㈜KT, 서울시설공단 등이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다.
협의체는 연 2회 이상 정기회의와 재난 등 긴급상황시 임시회의를 통해 각 기관이 개별적으로 시행해온 공동 조사를 비롯한 지하시설물 안전관련 정보 공유와 합동 점검·훈련 등 복합 재난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상호 협력하게 된다.
김학진 서울시 안전총괄실장은 3일 “서울 지하에 묻혀있는 전기, 통신, 가스, 상하수도관들은 1000만 시민의 편리한 생활과 경제활동 기반이 되는 생명선이나 다름없다”며 “특히 서울의 지하시설물 중 절반 이상은 다른 기관에서 관리되고 있어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데, 올해 지하시설물 안전관리협의체가 구성돼 통합 재난대응시스템이 구축되고 상호협력을 통해 신속하고 효과적인 통합적 대응이 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 ‘지반침하’는 땅 속 빈 공간 ‘공동’이 지지력 잃으면서 생기는 현상
도로 안전이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하던 2014년 당시 언론들이 ‘지반침하’를 ‘싱크홀’로 잘못 표현하면서 국민 불안감이 커진 측면이 있다. 도로 안전은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공동(cavity)은 포장층까지 붕괴되지 않고 지반 속 빈 공간으로 있는 것을 말한다. 종전에는 동공(洞空)이라고 불렀다. 공동 내부가 점점 커져 지지력을 잃거나 상부 지반이 얇아지면서 견디지 못하는 순간에 공동은 지반침하로 이어진다.
지반침하는 땅 속에 숨어 있는 빈 공간(공동)이 존재하고 그 상부에 있는 포장의 균열이나 패임현상(포트홀)이 가중되어 아스팔트가 차량 통행 등으로 지지력을 잃는 순간에 발생한다. 점착력이 거의 없는 세립분이나 모래질 흙은 물에 잘 쓸려가기 때문에 공동의 확장을 촉진시키며 지반침하는 이같은 되메우기 지반에서 주로 발생한다. 지하안전법상 정의는 지하개발 또는 지하시설물의 이용·관리 중에 주변 지반이 내려앉는 현상이다. 2018년부터 ‘도로함몰’ 대신 ‘지반침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포트홀(pot hole)은 집중 호우과 차량 통행 증가 등으로 아스팔트 표면이 패인 현상을 말한다.
싱크홀(sink hole)은 석회암, 석고, 암염 등의 지층이 지하수와 지표수의 화학적인 영향에 의해 하부 지반이 유실되어 지표층까지 깔대기 또는 원통 모양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붕괴 현상이다. 주로 석회암질, 화산재질 등 특수지반에서 지질 변화로 일어난다. 오랜 시간 지하수에 녹아 동굴 등 빈 공간이 생겼다가 점점 확대되어 최종적으로 지반이 붕괴된다. 싱크홀은 주로 해외 사례가 많고 서울은 지질 변화가 없는 안정된 화강편마암 계통 지반이어서 싱크홀이 발생한 적이 없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