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는 왜 한 번도 안 온다냐, 여즉 논에서 일하는겨? 오째 이리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 하늘 깊어진 걸 보니께 벼 벨 때가 된 것 같기는 헌디, 암만 그려도 엄니 얼굴 잊어부리믄 안되지. 참말로 벨일이여.
아무 말도 못하고 처마 그늘만 만지작거렸다. 치매 걸린 할머니가 한 번씩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를 찾는데, 울안에 번개 맞아 쓰러진 향나무 저승 간 지 오래라고 차마 말도 못하고 그저 틀니 빠진 주름진 입안에 아, 하고 사탕 하나 넣을 뿐이다.
박경희의 시집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중
치매 걸린 할머니는 아들이 진작에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지 못하고, 손녀는 할머니에게 아버지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됐다는 걸 말하지 못한다. 치매 걸린 할머니가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거여서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아들이 살아있다고 여기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서일까. 손녀는 할머니의 주름진 입에 사탕 하나 넣어드릴 뿐이다. 시를 쓴 박경희는 2001년 등단해 시집 ‘벚꽃 문신’, 산문집 ‘꽃 피는 것들은 죄다 년이여’ 등을 발표한 시인이다. 독자들에게 아릿한 아픔을 전하는 저 작품은 그가 발표한 신작 시집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