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경제’ 키우기에만 치중… 안전은 수수방관

입력 2019-10-05 04:04

정부는 미세먼지가 많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미래 에너지원으로 수소를 꼽는다. 수소경제를 혁신성장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한국을 전 세계 수소산업의 선두로 키우기 위한 로드맵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 수소 충전시설 폭발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수소가 안전한 에너지원이냐는 논란도 커지고 있다.

수소경제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일본 유럽연합(EU) 등은 수소를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각종 법·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일본은 수소 충전소의 사고에 대비해 비상 대응지침까지 마련했다. 반면 한국은 ‘수소경제 확산’에만 집중하면서 수소 안전을 독립적으로 다루는 법조차 없다. 사고가 났을 때 체계적이고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수소 안전 관련 법·제도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수소경제로 달려가는 세계

4일 국토연구원의 ‘안전한 수소사회 실현을 위한 모빌리티 정책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한 각국은 수소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수소 모빌리티·인프라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지난해 1만8000대에 그친 수소차 보급대수를 2022년 8만1000대까지 4배 이상 끌어올릴 계획이다. 2040년에 620만대(수출 330만대, 내수 290만대)의 수소 승용차를 누적 생산·판매한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또 지난해 기준으로 18곳에 불과한 수소 충전소를 2022년 310개, 2040년 1200개로 확대할 예정이다. 일반 주유소의 10% 안팎에 이르는 규모까지 수소 충전소를 만들어 내수를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산업·가정용 전기의 일부를 ‘수소발전’으로 대체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2040년까지 15.0GW(발전설비 용량 기준)의 대형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를 구축할 방침이다.

다른 나라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30년까지 수소차 100만대를 보급하고, 수소 충전소를 1000곳 구축한다. 독일은 수소기차를 시범 운행한 데 이어 2040년까지 디젤열차를 수소기차 등 친환경 차량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일본은 가장 적극적이다. 전국에 수소 충전소 100곳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수소차 충전소 18곳(일반인 이용 가능 14곳)에 불과한 한국과 대비된다.

안전문제 함께 떠올라

국내외에서 수소 충전소 폭발 등 인프라 관련 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5월 강릉에서 수소탱크가 폭발해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지난 6월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소 충전소 폭발사고가 발생해 2명이 부상을 당했다. 노르웨이는 다른 지역의 수소 충전소를 폐쇄조치했다. 수소라는 에너지원은 폭발 시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수소 인프라가 일상으로 들어오려면 안전문제는 필수적으로 따라붙는다.

그러나 한국은 안전성 논란을 해결할 법·제도적 장치가 전무하다. 수소 충전소 등 인프라 안전관리 기준과 설계지침 등을 다루는 법·제도가 없다. 기존 법 체계를 활용해 수소인프라 설치·관리·정비 규제사항을 추가할 뿐이다.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을 수정해 수소를 다룰 수 있는 인력의 자격요건 등을 규제하는 식이다. 그나마 수소 안전 관련 법안 2개가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되긴 했다. 다만 국회 계류 중이고 언제 통과될 지 미지수다.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실제로 법을 수소 인프라 곳곳에 적용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각국은 빠르게 안전 규정을 갖추고 있다. 일본은 규제 기준을 일찌감치 정비했다. 고압가스보안법, 소방법, 건축기준법 등에 수소 충전소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관리 규정을 넣었다. 이어 안전 강화책으로 ‘비상대응 지침’을 범정부(일본 국립연구 개발법인 신에너지·산업기술 종합개발기구) 차원에서 만들고 있다. 수소 충전소와 다른 설비나 건축물의 이격거리, 충전소 위치, 수소 에너지 운송수단, 충전·보관시설 재료, 운영 방법 등의 분야별 안전규정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수소 충전소에서 수소가 유출되는 걸 막고, 만약 유출되더라도 조기에 발견해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대비책이다.


EU는 ‘수소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EU 내 18개국의 법률에서 수소에너지 사용 관련 법적 체계, 관리절차를 조사한 뒤 공유할 예정이다. 일종의 플랫폼을 구축해 ‘법·제도 칸막이’를 없애고 수소경제를 확산하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해 안전성 강화책을 미리 깔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정화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수소사회 실현을 위해 충전인프라 안전성 관리에 대한 기준,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소 충전소를 구축하고 관리·정비하는 특별 안전관리기관(수소안전 컨트롤 타워)을 세우는 식으로 제도적 차원에서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국민이 수소 충전소에 느끼는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주민수용성 제고 방안을 법안으로 제정하고, 토지이용계획과 연계해 충전소 설치 안전거리 규제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