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감 형성하며 마음 흔들자… 33년 만에 털어놓은 이춘재

입력 2019-10-02 00:17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가 화성 사건 9건을 포함해 14건의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사진은 이씨의 고등학교 재학 시절 모습.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됐음에도 범행 사실을 극구 부인하던 이춘재(56)는 기존에 알려진 5, 7, 9차 사건 외에 1986년 12월 4차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자신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그는 경찰이 프로파일러 여러 명을 투입해 본격 대면조사를 진행한 지난주부터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프로파일러들은 정서적 친밀감과 신뢰를 뜻하는 ‘라포’(rapport·친밀관계)를 형성하면서 자백을 유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7차 사건 직후 그를 목격한 버스 안내양의 진술도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더 이상 범행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자 이씨는 가석방 희망을 포기하고 자백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이씨 대면조사에 총 9명의 프로파일러를 부산교도소에 보내 1일까지 모두 9차례 조사를 진행했다. 2009년 여성 10명을 살해한 강호순의 심리분석을 맡아 자백을 끌어낸 공은경(40·여) 경위 등 기존에 투입된 경기남부청 소속 프로파일러 3명과 범죄분석 경력 및 전문성 등을 고려해 전국에서 선정한 프로파일러 6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이 가운데 6명은 이씨 입을 여는 역할을 하고, 3명은 정확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씨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대면조사에서 프로파일링 기법 중 하나인 ‘라포’를 형성해 이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형사들과 프로파일러들은 또 4차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용의자 이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를 토대로 이씨를 압박했다. 경기남부청의 이 사건 수사본부는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4차 사건의 증거물 중 피해자 속옷 등 5곳 이상에서 이씨의 DNA가 검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앞서 5, 7, 9차 사건에 이어 또 다른 과학적 증거가 나오자 더 이상 범행을 부인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7차 사건 직후 버스에 올라탄 이씨를 눈여겨본 당시 버스 안내양 A씨가 최근 경찰에 “이씨가 범인이 맞다”고 진술한 것도 그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9차례의 살인사건 외에 그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던 화성 및 충북 청주 일대 유사 범행 역시 자신이 저지른 것이라고 털어놨다. 경찰은 공식적으로 이씨가 자백한 추가 범행이 어떤 사건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화성 일대에선 1차 사건이 발생한 1986년 9월 이전에 성폭행 사건이 수차례 발생했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으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들 성폭행 사건 범인이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해 왔다.

화성 사건 3건은 1986년 9월 1차 살인사건 이전, 청주에서 발생한 2건은 이씨가 청주로 이사를 간 1993년 4월부터 1994년 1월 이전에 발생한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

이씨가 범행을 자백했다고 해서 바로 그를 범인으로 특정할 수는 없다. 경찰은 이씨 자백이 신빙성이 있는지 보강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기남부청 관계자는 “자백 내용에 대한 수사기록 검토, 관련자 수사를 진행한 뒤 수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강희청 기자,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