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오는 5일 비핵화 실무협상을 개최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에 따라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남 가능성이 커졌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문에서 “조·미(북·미) 쌍방은 오는 4일 예비접촉에 이어 5일 실무협상을 진행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남·북·미가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정상회동을 한 지 98일 만에 북·미 실무협상이 열리는 것이다. 이날 미 국무부도 구체적 날짜와 장소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1주일 내 북·미 협상이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양측 협상 대표로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나설 전망이다.
당초 우리 외교 당국이 실무협상 재개 시기를 ‘2~3주 내’(9월 말 기준)로 예상했던 것을 감안하면 실제 일정은 예상보다 앞당겨진 것이다. 그동안 북·미가 뉴욕 채널 등을 통해 속도감 있게 실무협상을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를 계기로 발신한 다양한 수위의 대북 메시지에 대해 북한이 비교적 빠르게 입장정리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북·미 실무진이 지난달 하순 실무협상 준비를 위한 사전 접촉을 가졌고, 이때 상당한 진척을 이뤘다고 들었다”며 “양측 간 분위기가 꽤 좋았고, 협상 시기와 장소뿐 아니라 의제에 관해서도 기초적인 의견 교환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북·미 고위 당국자의 발언도 이번 실무협상 성과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최 부상은 담화문에서 “우리 측 대표들은 조·미 실무협상에 임할 준비가 돼 있다”며 “나는 이번 실무협상을 통해 조·미 관계의 긍정적 발전이 가속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지난 26일(현지시간) “우리 팀은 북한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북·미 실무협상이 정상회담 합의를 위한 작업인 만큼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빅 이벤트’가 연쇄적으로 열릴 수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올 연말을 북·미 협상 시한으로 못 박았던 점과 ‘탄핵 정국’에 빨려들어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3차 정상회담 연내 개최가 전격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평양이나 워싱턴에서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의 연내 방남도 기대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방남은) 비핵화 협상의 진전과 연관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보고했다.
북한은 이날 실무협상 일정은 공개하면서도 개최 장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판문점과 평양, 북한대사관이 있는 유럽 국가들이 거론된다. 지난 1월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남·북·미 협상 대표가 참여하는 회의가 열렸고, 2월에는 평양에서 실무협상이 열린 바 있다.
청와대는 북한의 발표에 즉각 환영 메시지를 내놨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실무협상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구축을 위해 조기에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본질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지지 못할 경우 3차 정상회담이 무산되거나 개최돼도 ‘하노이 노딜’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승욱 손재호 이형민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