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팬덤(fandom·열성팬) 정치’가 여의도를 휩쓸고 있다. 조 장관 임명을 둘러싼 찬반 양론이 격화되자 여야 정치인들이 열성 지지층만 의식해 이들의 구미에 맞는 자극적인 발언을 앞다퉈 쏟아내는가 하면 아예 국회를 뛰쳐나가 ‘거리의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팬덤 정치가 더 만연될 경우 진보와 보수 양 진영에서 합리적 목소리는 사라지고, 일부 골수 강경파만 득세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8일 서울 서초동 검찰 개혁 촛불집회 이후 당내 기류가 확 달라졌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1일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면서 여권 내부에서 조 장관의 거취 등을 고민하던 사람들이 이제 단 한마디도 못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이후 중진, 초선 할 것 없이 여당 의원들은 SNS에 앞다퉈 집회 참석 인증글과 사진을 올렸다. 또 약속이나 한듯 윤석열 검찰총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공개 발언을 쏟아냈다. 4선 중진인 안민석 의원은 방송에 나가 “(조 장관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기소가 현실화하면 지난주보다 2배 넘는 촛불이 모일 것이고, 그러면 윤 총장 스스로 거취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조차 “집권여당 중진이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건 무리수”라는 반응이 나왔다.
조국 사태 초반 릴레이 삭발로 지지층 마음을 붙들었던 자유한국당은 3일 광화문 집회에 총력을 쏟고 있다. 한 한국당 의원은 “여권이 서초동 집회의 참석자 수치를 부풀리며 대대적 공세에 나선 만큼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버스를 대절해 지방에서도 많이 상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선 100만, 200만 인원을 결집해 서초동 집회가 민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며 벼르고 있다. 한창 민생을 챙겨야 할 때인 정기국회 회기에 길거리 집회 인원 동원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의 행태에 대해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는 헌법의 삼권분립 정신에 따라 입법을 통해 사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며 “꼭 해야 할 입법은 팽개친 채 거리로 나가 세력을 끌어모으고 ‘우리 편이 더 많다’고 주장하는 건 국회 스스로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진영 논리를 앞세워 세 대결을 벌이고 지지층에 호소하는 팬덤 정치 양상은 심화될 전망이다. 특히 지금은 열성 지지층부터 조 장관과 윤 총장을 향해 꽃과 선물을 보내고, 실시간 검색어 대결을 벌이면서 의원들 역시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이 조 장관에 대해 언급만 하면 의원실로 전화가 엄청나게 걸려온다”며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다 보니 의원이나 보좌진은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여당이나 야당 모두 소수파의 발언을 억압하고, 지지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목소리만 대변하게 만들고 있다. 민주당은 조 장관과 관련해 ‘단일대오’를 주문하며 비판 발언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한국당에서도 여당과 전쟁 중이니 지도부를 흔들지 말라며 비판을 봉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태가 결국 정치를 후퇴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공천권을 중심으로 당내 이견을 철저히 억압하고 의원들이 목소리를 못 낸다면 더 이상 정당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나래 심희정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