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원금 손실 폭탄이 터진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DLS)’ 사태는 예고된 재난이었다. 애초에 수익 대비 위험이 크게 설계된 상품이었지만 판매 은행들은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손실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하며 판매에만 열을 올렸다. 국내외 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5% 가까운 수수료를 챙기는 동안 ‘고객 피해’를 우려하는 내부 목소리는 묵살됐다. 손실 투자자 절반가량은 60대 이상이었다. 금융감독원은 이번 사태를 “금융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초래한 참사”라고 규정했다.
금감원은 1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주요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중간 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지난달 25일까지 만기가 남은 DLF 6723억원 가운데 5784억원이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예상 손실률은 52.3%(3513억원)로 추산된다. 금감원은 지난 8월 말부터 DLF를 판매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증권사 3곳, 자산운용사 5곳을 현장 조사했다.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은 “중간검사 결과 DLF 상품의 설계·제조·판매 전체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이 투자자 보호보다 자신들의 이익만 중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되는 DLF 투자자의 92.6%(3004명)는 개인이었다. 1억원대 투자자가 65.8%로 가장 많았다. 이어 2억원대 17.5%, 3억원대 6.6% 등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60대 이상이 48.4%(1462명)였고, 70대 이상 비율도 21.3%(643명)나 됐다. 60대 이상 투자자의 확정 손실률은 52.8%였다. 70대 이상 투자자로 좁혀봐도 49.2%였다. 투자한 노후자금의 절반을 날린 셈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DLF 상품은 설계부터 제조, 판매까지 문제점 투성이였다. DLF의 기초자산이 되는 파생결합증권(DLS)을 국내 증권사에 먼저 제안한 곳은 외국계 투자은행(IB)이었다. DLS는 독일 국채 금리 등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증권사는 국내 은행들과 함께 수익률, 만기 등 DLS 상품구조를 설계했다. 은행은 자산운용사와 함께 DLS를 펀드(DLF) 형태로 만들어 출시했고 프라이빗뱅킹(PB), 은행 창구 등을 통해 팔았다.
또한 금융회사들은 수수료만 챙기고 손실 위험은 고객에게 모두 떠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계 IB는 위험회피 비용 등을 명목으로 3.43%의 수수료를 챙겼다. 은행(1.00%)과 증권사(0.39%), 자산운용사(0.11%)도 수수료를 떼어 갔다. 이들이 총 4.93%를 수수료로 챙기는 동안 은행이 투자자에게 제시한 약정 수익률은 2.02%(6개월 기준)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기초자산인 독일 국채 금리, 영국·미국 이자율스와프(CMS) 금리 등이 최근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봤다.
높은 수수료를 챙긴 금융회사들은 ‘손실 리스크(위험)’ 점검에는 뒷전이었다. 한 증권사는 내부 리스크관리부서에서 “금리 하락이 심상치 않아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지만 그대로 DLS를 발행했다. 자산운용사들은 단순히 과거 독일 국채 금리만으로 수익률 모의실험을 한 뒤 ‘손실 위험 0%’라는 자료를 은행에 제출했다. 은행은 이를 검증도 하지 않고 상품 판매의 근거 자료로 썼다.
은행의 내부통제 절차도 엉망이었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내규에는 ‘고위험 상품 출시 결정 시 내부 상품선정위원회 심의 및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실제 DLF 상품 가운데 상품선정위 심의를 거친 건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DLF 투자자의 손실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상품구조를 바꾸며 새로운 상품을 팔았다.
금감원은 판매된 DLF 상품의 5건 가운데 1건 이상이 ‘불완전 판매’라고 판단한다. 투자자가 자필로 ‘설명을 듣고 이해하였다’는 문구를 써야 하는데도 누군가 대필한 흔적이 있거나, 상품 판매자격이 없는 직원이 대신 판매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한다.
금감원은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을 대상으로 추가 검사를 하고, 법규 위반사항은 제재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200여건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의 경우 조만간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손해배상 여부 및 배상 비율을 결정하기로 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