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은 것은 대중에게서 윤리적 지탄을 받는 사건에 휘말리면서부터다. 특히 일부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과 성도들의 도덕적 불감증은 사회가 교회를 등지게 하는 결정적 이유로 꼽혔다. 주요 교단 총회에서 목회자와 성도의 윤리의식을 논의하는 모습도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 됐다.
올해 총회에서는 수년간 연구와 논의를 이어왔던 ‘교회 내 성폭력 대응’에 관한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돼 눈길을 끌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육순종 목사) 양성평등위원회는 총회 첫째 날인 23일 ‘성폭력 예방과 처리 지침서’를 총회대의원(총대)에게 배포했다. 60여쪽 분량의 지침서에는 지난해 총회에서 결의한 ‘성 윤리 강령’을 시작으로 언어폭력, 주의해야 할 행동 등 구체적 예시까지 수록한 ‘교회 성폭력의 정의와 특성’, 교회 내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의 대응방법과 처리절차 등이 상세하게 담겼다.
102회 총회에서 기각됐던 ‘교회 내 성폭력특별법 제정’은 2년 만에 진전을 봤다. 당시엔 ‘사회법을 적용해 법정에서 다뤄질 문제일 뿐 교단이 특별법을 만들 이유가 충분치 않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이번 총회에서는 지난 5월 제자를 성폭행한 의혹을 받은 한신대 A교수를 파면했다가 돌연 처분을 취소하는 등 교단 신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의 징계 문제가 다뤄지면서 관련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기장은 교단법과 헌법의 충돌을 막기 위해 헌법위원회 연구를 거쳐 105회 총회 때 보고하기로 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총회장 김태영 목사)도 ‘교회 성폭력 대응 지침서’를 채택했다. 총회 임원회 자문 기구인 교회성폭력대책위원회가 마련한 지침서에는 교회 및 노회가 성폭력 사건 발생 시 대책위원회 구성, 조사 진행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대해는 태도 등의 매뉴얼이 수록됐다. 교육공무원법에 근거해 공소시효 및 징계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자료를 첨부했다.
반면 예장합동(총회장 김종준 목사) 제104회 총회에서는 ‘목회자 윤리 강령 제정의 건’이 8년째 기각됐다. 최근 한국교회 개혁과 윤리를 강조해 왔던 청어람ARMC의 대표가 불륜으로 물의를 일으켜 면직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교회 내 윤리의식 회복에도 관심이 높았지만 아쉬움을 남겼다.
여성사역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없는 교단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도 여전하다. 예장합동은 ‘여성사역자에게 강도사 고시를 치를 수 있게 하자’는 안건을 ‘1년 더 연구하자’며 결의를 유보했다. 교단 관계자는 “타 교단이 여성사역자 중심의 특별위원회나 자문기구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결의에 영향을 주는 데 비해 예장합동은 창구를 마련하는 것조차 어렵다”며 “시대흐름에 부응하는 여성사역자 양성을 위해서라도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