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들 진영으로 나뉘어 미쳐버린 것 아닌가”

입력 2019-10-02 04:01
진영 싸움 돼버린 조국 사태에서 총성 없는 전쟁의 광기를 본 진중권… 이런 식으로 얻는 결과가 과연 정의로울까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조국 사태와 관련해 몇 마디를 했다. 그는 대표적 진보 논객이면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친구이기도 하다. 라디오에서 책 얘기를 하다가 말미에 꺼낸 관전평은 짧았지만 직설적이었다. “다들 진영으로 나뉘어 미쳐버린 게 아닌가 싶다.” 조국 문제가 불거진 뒤 한국 사회는 극명하게 둘로 갈라졌다. 조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쪽과 찬성하는 쪽, 검찰 수사를 지지하는 쪽과 비난하는 쪽, 장관 가족이 들춰낸 공정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쪽과 적폐 집단인 검찰의 개혁이 더 중요하다는 쪽. 대통령마저 편 가르기에 뛰어들면서 진영 대립은 한층 첨예해졌고 진영 내부의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졌다. 옳고 그름을 따지던 논쟁은 무조건 이겨야 하는 전쟁이 됐다. 전쟁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조국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논리를 왜곡하고 사실을 호도하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피의자의 컴퓨터 반출은 “증거 보전”이 됐고, 압수수색은 “인권 탄압”이 됐으며, 표창장 위조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 돼 간다. 엄정한 수사를 주문한 지 두 달 만에 절제된 수사를 지시하는 민망함과 내 진영의 머릿수만 세어본 뒤 ‘국민’의 목소리라 주장하는 어색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지경에 왔다. 진 교수는 이런 총성 없는 전쟁의 광기를 말하고 있었다. 그는 “신뢰했던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됐고, 존경했던 분을 존경할 수 없게 돼서 제가 완전히 윤리적 패닉 상태”라며 “진보가 기득권이 돼버린 느낌이라 젊은 세대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더라고도 했다.

참여연대에서 벌어진 일은 이처럼 진영 전쟁으로 변질된 사태의 단면을 보여줬다. 김경율 집행위원장이 SNS에서 조 장관을 비판하고, 의혹에 눈을 감았다며 참여연대를 비난했다. 그의 주장은 사모펀드 의혹을 살펴보니 문제가 있더라, 권력감시 단체인 참여연대가 지적해야 한다는 거였다. 참여연대는 수용하지 않았고, 그래서 공개적으로 말했더니 회원들이 일제히 그를 비난했고, 참여연대는 SNS 글을 문제 삼아 그를 징계위에 회부했다. 이 상황의 배경에는 조 장관은 우리 편이며 같은 편에 대한 공격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진영의 입장과 다른 생각은 적전분열 행태로 치부되는 전쟁의 논리가 이성을 압도하고 있다. 조 장관을 앞세운 진영은 지금 힘으로 밀어붙이는 중이다. 옳다고 믿는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수많은 가치를 뭉개며 간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만 정의로우면 된다는 식이다. 그렇게 도달한 결과가 과연 정의로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