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이경훈] 광화문광장을 비우라

입력 2019-10-02 04:05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보류되었다. 각계의 우려와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청계천도 반대가 많았다’며 꿈쩍하지 않고 진행되던 사업이다. 시장과 대통령의 회동 이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발표가 개운치만은 않다. 논의 과정에서 이보다 절망적인 지점은 당시 행안부 장관의 반대 이유였다. 계획에 포함된 정부서울청사는 주차장과 담장 없이는 쓸모없어진다는 것이다. 관공서를 동헌쯤으로 이해하는 인식은 아직 근대와 계몽의 강을 건너지 못한 징후이다. 여기에서 현대적이며 독창적인 공간을 기대하는 일은 성급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새 광장계획에서 재고하고 덜어내야 할 것을 제안해본다.

첫째로 광화문광장은 국가 단위의 상징공간이라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물론 서울시민의 것이지만 그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공간이다. 직접 가보는 경험뿐 아니라 TV나 영화 같은 매체를 통해서도 시각적으로 체험되고 소비되는 공간이다. 시민의 휴식처 등의 구호는 얼핏 타당해 보이지만 공간의 성격을 감안하면 항상 옳지는 않다. 휴식을 위한 공원이라면 근처에 서울광장도 청계천도 탑골공원도 있다. 광장은 그보다는 훨씬 상징적이며 공공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둘째로 월대 복원의 문제이다. 월대란 전통건축에서 중요한 건물 앞에 조성하는 석축 기단을 말하는데 광화문 앞에 월대가 있었으니 이를 복원하자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현재의 도로는 월대를 피해 굽어져야 하고 인근 차량 통행체계는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경복궁의 완벽한 복원은 중요한 일이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왕이 없는 나라에서 왕궁의 복원이 현재의 도심구조를 뒤흔들 만큼 합의된 일인지는 의문이다. 경복궁은 조선의 정궁이기는 하지만 이미 100년 전부터 현대도시 서울과 만나는 과정에서 범위와 선형도 변한 상태다. 지금은 도로 한가운데 떨어져 있는 동십자각이 한때 경복궁의 모퉁이였음을 생각해보면 가능한 일도 아니다. 게다가 어느 시점으로 복원할지도 분명치 않다. 역사유산은 존중하고 보존하되 현대 도시공간을 풍요롭게 하는 자산으로 시야를 넓혀서 다시 살펴보기를 권한다.

셋째로 지하광장은 자체로 모순이다. 보행자를 위한 도심을 만들고 보행자를 위한 광장을 조성하면서 지하로 사람을 몰아넣는 발상은 논리적이지 않다. 도시에서 자동차의 원활한 통행이 중요했던 개발시대의 잔재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광장은 비어야 광장이다. 광화문광장이 생긴 지 10년이 되지 않아 다시 논의하게 된 것은 공간의 생경함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 광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이나 문화는 아니다. 더구나 중국 천안문 광장 같이 문을 중심에 두고 편안해 보이는 옆으로 퍼진 공간이 아니고 종으로 깊고 역동적인 공간이어서 광화문광장은 낯설다. 이 생경함에 대해 불편해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현대 도시공간으로 매력 또한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건축의 역할은 주어진 공간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미국 건축가 루이스 칸이 설계한 미국 샌디에이고의 소크연구소는 중요한 참조가 될 수 있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나스 소크가 설립했고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생물학연구소이다. 의학적 성과보다 더 널리 알려진 것은 연구소 건물이다. 바다를 향해 열린 마당을 두고 두 개의 건물이 마주 보는 형태인데 이 중정에 나무를 심는 문제를 놓고 건축주와 격론을 벌이던 칸은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바라간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심지 말고 그냥 두시오. 완벽하게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어야 채울 수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비어져 태평양의 석양으로 채워진 이 중정은 종종 20세기 가장 위대한 공간으로 선정될 정도다.

광화문광장은 말 그대로 정원이 아닌 광장을 만드는 일이다. 관청이든 민가든 그 앞을 비어두는 것이 한국적인 공간이다. 자연은 시각적으로만 빌려오는 이른바 차경(借景)이 외부 공간계획의 상례이다. 광장에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드는 대신에 북악과 인왕의 장엄함과 푸름을 빌리고 광장은 비워둠이 어떠한가. 그렇게 이 깊은 공간의 중심에 경복궁이 놓이는 것이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아니겠는가.

이경훈(국민대 교수·건축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