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영훈] 이혼은 누구 책임?

입력 2019-10-02 04:02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긍정심리학 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연구실을 고든 버먼트(Gordon Bermant)라는 교수와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연구실을 같이 쓰기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아 나는 버먼트 교수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70살이 넘은 그가 몇 십 년을 같이 산 아내와 여전히 애정 넘치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부부는 이미 잉꼬부부로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부러움을 받고 있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법을 궁금해 하던 나에게 버먼트 교수는 “나는 아내를 남 대하듯이 대한다”는 말로 나를 당황케 했다. 그의 비법을 들으며 애써 헛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속으로 “남처럼 대하려면 결혼을 왜 해?”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버먼트 교수의 말은 결혼 생활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뼈저리게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인간관계이고,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아마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결혼한 모든 사람은 결과적인 측면에서 세 부류 중 하나로 구분된다. 첫 번째 부류는 결혼 생활이 불행해 이혼하는 부부이고, 두 번째 부류는 불행하지만 이혼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부부이고, 세 번째 부류는 행복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부부이다. 어느 부류에 속할지는 결혼 생활의 행복감 정도와 이혼 여부에 의해서 결정된다. 심리학자들은 지난 50년 동안 이러한 세 가지 결과론적 부류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이혼과 불행한 결혼 생활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많은 당사자가 굳게 믿는 것처럼 이 모든 책임은 부족한 상대 배우자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면 (많이 양보해서) 부부간의 성격 차이가 이혼과 불행한 결혼 생활의 주범일까?

안타깝게도 리처드 루커스(Richard Lucas) 교수의 연구팀이 2010년에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두 가지 요인은 불행한 결혼 생활을 1%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상대 배우자도 아니고 부부 간의 성격 차이도 아닌 주범이 따로 있었던 셈이다. 이 두 가지 요인보다 15배나 더 많은 설명을 하는 주범은 다름 아닌 ‘본인’의 성격적 특질이었다. 특별히 ‘본인’의 정서적 안정성, 원만성(친화성), 성실성의 유무가 행복한 결혼 생활과 불행한 결혼 생활을 구분 짓는 중요한 성격적 특질로 밝혀졌다. 그럼 이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두 번째 부류의 부부에서 언급했듯이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해서 모든 부부가 이혼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부부는 행복하지 않지만 이혼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 불행하지만 이혼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두 번째 부류의 부부는 불행하여 이혼하는 첫 번째 부류의 부부와 어떤 점이 다를까?

로웰 켈리(Lowell Kelly) 교수의 연구팀이 1987년에 진행한 연구에 의하면 이 두 부류의 차이점 역시 (환경적 특성이 아닌) 성격적 특질에 의해서 설명됐다. 특별히 남녀 차이가 있었는데, 남자의 경우는 자기 통제력이 낮은 사람이 그리고 여자의 경우는 신경증이 높은 사람이 불행한 결혼을 유지하기보다는 이혼을 택할 확률이 현저하게 높았다. 남자의 경우는 불끈하는 성격적 특질이, 여자의 경우는 감정 기복이 심한 성격적 특질이 이혼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불행한 결혼 생활과 이혼은 누구의 책임일까? 많은 사람은 상대 배우자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하고 서로 다른 성격을 주범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때로는 결혼 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경제적, 가정적) 상황들을 지목하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변수들이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수들을 활성화시키고 조정하는 핵심 주범은 본인 안에 숨어 있을 수 있다.

김영훈(연세대 교수·심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