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현실에 말씀을 이루시는 살아있고 운동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의 실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실체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말씀은 우리가 수고해서 그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이 스스로 일을 하여 이루십니다.(창 1:3)
우리 안에 계시는 말씀 자신이 스스로 일을 하셔서 말씀을 이루어내심으로 임마누엘의 실체를 경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임마누엘의 실체로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 믿음이 성도의 삶에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내게 됩니다.(히 11:1)
바울 사도는 아라바광야에서 자신 안에 예수님의 나타내심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 사도에게 임마누엘의 실체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내 삶에서 예수님을 실체로 경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임마누엘의 실체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할 때 말씀을 사람의 계명으로 듣습니다.(마 15:8~9) 태생적으로 자신의 힘과 수고를 의지합니다. 사람의 말에는 생명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일을 하십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바울 사도의 말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살전 2:13)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이 임마누엘의 실체를 믿은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말씀을 이루신다는 믿음은 임마누엘의 세 가지 생명력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태생적 생명력입니다. 임마누엘의 실체로 말씀을 친히 이루신다는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소속입니다. 흑암 속의 우리에게 임마누엘 하셔서 하나님 안에 두십니다.(요일 5:19~20) 때로 절망을 겪는 우리의 생명줄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입니다.(요일 5:4~5) 말씀을 믿을 때 우리 안에 실체로 오셔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주십니다. 임마누엘의 실체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이루시는 생명력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예수님께서 임마누엘의 실체로써 이루신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임마누엘의 실체로 세상 모든 죄악을 속하시고(마 3:15) 주님을 근본적으로 떠난 우리 허물과 죄를 용서하셨습니다.(엡 2:1) 또한 임마누엘의 실체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새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히 9:12~15) 우리는 율법의 정죄로 인해 계속 죄를 지었다고 정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로부터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영원한 약속의 기업을 잇게 하셨습니다. 이를 “내 피로 세운 새언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눅 22:20)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이 모든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다고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새언약의 중보자가 되신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 율법이 지켜지게 됩니다. 이를 이루시기 위해 우리 안에 임마누엘 하시어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말씀을 이루어 내십니다. 그것이 임마누엘의 실체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이심과 우리가 그 몸이 되는, 임마누엘의 실체로 우리 안에 오셨음을 교회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임마누엘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이강우 목사(서울 좋은나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