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은, 예산으로 1%대 직원 주택대출

입력 2019-09-30 18:38 수정 2019-09-30 21:00

스스로 돈을 찍어 예산을 충당하는 한국은행이 수년간 1%대 초저금리로 직원들에게 주택자금을 융통한 것으로 드러났다. 급여나 복리후생비 예산은 정부 승인을 받지만 주택융자금은 그 대상이 아니다. 중앙은행이 독립적 지위와 독점적 발권력을 이용해 방만 경영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한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한은은 2015년부터 올해 8월까지 5년간 직원들에게 연 1.5~1.9% 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줬다. 같은 기간 예금은행 주택담보대출 가중평균금리(연 2.47~3.39%)와 비교해 1.0~1.5% 포인트 낮다. 한은 직원이 사내 대출로 5000만원을 빌린다면 연 50만~75만원의 이자 부담을 더는 셈이다.

한은이 지난 8월 직원들에게 주택자금을 대출하면서 적용한 금리는 1.7%로 시중 주택담보대출 가중평균금리(2.47%)보다 0.77% 포인트 낮다. 이 대출금리는 2014년 2.7%에서 2015년 1.8%로 뚝 떨어진 뒤 현재까지 1%대를 유지해 왔다. 주택담보대출 가중평균금리가 3.27%였던 2017년에는 절반도 안 되는 1.5% 금리로 주택자금을 융통했다.

한은의 직원 주택자금 대출금리 인하폭이 시중 주택담보대출금리 하락폭보다 크다는 점도 눈에 띈다. 시중 대출금리가 2014년 3.55%에서 2015년 3.03%로 0.52% 포인트 내릴 때 한은 직원 대출금리는 2.7%에서 1.8%로 0.9% 포인트 꺾였다. 거의 배 수준이다. 시중 대출금리가 2016년 2.91%에서 2017년 3.27%로 오를 때도 한은 직원 대출금리는 1.5%를 유지했다.

한은의 직원 주택자금 대출 잔액은 말일 기준으로 2015년 43억6900만원, 2016년 38억5600만원, 2017년 37억2400만원, 지난해 39억3400만원에 이른다. 1인당 대출 한도는 5000만원이다. 대출금은 사내근로복지기금이 아닌 일반 예산에서 가져다 쓴다. 무자본 특수법인인 한은은 정부 등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필요한 만큼 직접 돈을 발행해 곳간을 채운다.

한은은 급여성 복리후생비 예산을 편성할 때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지만 주택융자금은 자본예산 중 직원 대여금으로 분류하고 있다. 예산상 한도는 없다. 한은 관계자는 “돈을 빌려주면 근저당을 설정하는 식으로 담보를 확보한다”며 “점점 이용 규모가 줄고 있어 한도를 책정해놓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1%대 셀프 대출’은 일반 서민이 0.01% 포인트라도 이자를 낮추기 위해 여러 은행 창구를 두드리는 현실과 상당한 괴리를 노출한다. 지난 16일 연 1%대 대출상품인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이 출시됐을 때 온라인 접수 창구인 주택금융공사 홈페이지는 신청자가 몰려 마비되기도 했다.

방만 경영 정상화 관련 기재부 지침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이 직원에게 주택자금 등을 빌려줄 때 시중금리를 감안해 이자율을 정하도록 한다. 한은은 독립된 통화신용정책기관이라는 지위상 이 지침을 적용받지 않는다. 한은의 대출금리는 통화안정증권 유통수익률을 적용하고 있다.

김영진 의원은 “발권력을 통해 예산을 만드는 한은이 사내 복지기금도 아닌 예산을 재원으로 삼아 시중금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낮은 금리로 직원에게 주택자금을 융자하는 것은 서민들의 박탈감을 가중시키는 특혜 행위”라며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