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국서 G2로 급성장 중국, 미국과 갈등이 ‘팍스 시니카’ 걸림돌

입력 2019-10-01 04:02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 앞에서 열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기념 헌화식에 도착해 행사장을 바라보고 있다. 중국은 10월 1일 건국 70주년을 맞아 역대 최대 규모의 기념행사를 준비하며 국력을 적극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은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망루에 올라 “오늘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수립됐다”고 선포했다. 괴멸 직전의 중국 공산당이 대장정(大長征·1934~35년))을 거쳐 서북부의 벌판인 산시성 옌안에 근거지를 마련한 지 14년 만에 이뤄낸 대역전 드라마였다. 마오쩌둥은 직전 열린 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중국 인민이 떨쳐 일어섰다(站起來了)”고 했다. 1942년 아편전쟁 이후 100년간 외세에 농락당한 굴욕의 역사, 악덕 지주와 토호에 핍박받던 농민, 부패한 관료 등 구시대를 갈아엎고 인민이 주인인 신중국이 열렸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은 가시밭길이었다.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던 경제발전 계획은 실패했고, 1958년부터 시작된 대약진운동은 재앙이었다. 강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마을마다 고로를 짓고 멀쩡한 쇠붙이까지 녹여 쓸모없는 선철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고로의 땔감용 나무를 대느라 전국의 산림이 황폐화됐다. 참새가 농작물에 해롭다며 박멸운동을 벌이자 병충해가 창궐했고 대기근이 이어졌다. 대약진운동 3년간 3000만~4000만명이 굶어 죽었다.

1966년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또 혼란에 빠졌다. ‘자본주의적 사상·문화·습관을 몰아내자’며 시작된 문화대혁명으로 대학은 문을 닫았고 각종 문화재가 파괴됐다. ‘반혁명 인사’로 지목된 수많은 지식인과 관리들이 어린 홍위병들 손에 끌려나와 조리돌림과 학대를 당했다. 이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약 300만명이 숙청되거나 죽었다고 전해진다. 여전히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을 거론하는 것은 금기다. 신중국 초기 30년은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1976년 마오쩌둥 사망 후 최고 실력자가 된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을 잠에서 깨웠다. 이후 중국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어느새 일본을 제치고 미국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1952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0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19년에는 13조6082억 달러로 452배나 늘었다. 1인당 GDP는 신중국 초기 119위안에서 지난해 6만4644위안으로 542배 늘었다. 중국의 GDP 순위는 1978년 세계 11위였으나 2010년에는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200여종의 공산품 생산량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GDP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대 1%대였으나 2018년 15.9%로 급증했다. 중국 외화보유액은 1978년 1억6700만 달러에서 2006년 1조 달러를 돌파하며 일본을 제쳤고 이후 13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농촌 빈곤 인구는 1978년 7억7000만명에서 2018년 말에는 1660만명으로 줄었다.

중국은 1950~70년대 인공위성과 원자·수소폭탄 기술을 확보했고, 2000년대에는 달 탐사에 성공하는 등 첨단 기술까지 갖췄다. 산업 구조가 선진화하면서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같은 세계적인 IT 기업들도 탄생했다.


하지만 중국의 급속한 부상은 미국 등 서방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취임하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몽(中國夢)을 역설하자 중국의 패권 야심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중국이 공격적으로 추진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에 대해 서방은 비판을 쏟아냈고 2015년 발표한 첨단 제조업 육성책 ‘중국제조 2025’도 미국을 긴장시켰다. 시 주석은 2050년까지 일류 군대를 건설하겠다는 ‘강군몽(强軍夢)’ 청사진도 제시했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할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로 대표되던 중국의 조용한 외교는 이제 세계를 주도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개혁·개방 40주년 연설에서 “중국은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세계는 중국이 경제·군사적인 측면에서 패권국이 되려 한다고 해석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을 선포하며 관세와 각종 제재 등 집중 공격을 퍼부었고 중국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지난해 중국 경제성장률은 28년 만에 최저치인 6.6%로 떨어졌고, 올해는 6.2%까지 추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무역전쟁 1년간 중국 제조업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졌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글로벌 기업들의 해외 탈출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중국은 대장정(大長征) 정신까지 거론하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14억 인구의 내수시장과 공산당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승리할 수 있다며 장기전 태세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느끼는 위기감은 심각한 수준이며, 공산당의 통제로 버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이 처한 위기는 시 주석의 장기집권 야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철폐하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시 주석의 장기집권 길이 열렸다. 앞서 2017년 10월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는 ‘시진핑 사상’이 당헌에 삽입되면서 시 주석은 마오쩌둥의 반열에 올랐다. 그동안 시 주석이 주창한 각종 정책이 ‘시진핑 사상’의 근거가 됐다.

시 주석체제 들어 사회 감시·통제 시스템이 강화된 것도 독이 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과거 문화대혁명 때만큼이나 엄혹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공포감이 적지 않다.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장기화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중 정서는 대만까지 확산되면서 그동안 중국이 주장해온 ‘일국양제’와 ‘하나의 중국’ 원칙까지 흔들리고 있다. 인민일보는 “지난 70년 동안 중국은 일어섰고(站起來), 부유해졌으며(富起來), 강해졌다(强起來)”고 했다. 하지만 신중국 70주년을 맞은 중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