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신동엽] 우리만 급증하는 오프쇼어링

입력 2019-10-01 04:03

최근 정치권이 첨예한 갈등에 휩싸인 사이 우리 경제가 심각한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있다. 2∼3년 전부터 OECD와 IMF에서 우리 경제의 저성장 위기를 경고했고, 한국은행도 전례없이 올해 성장률 예상을 반복 하향 조정하고 있다. 저성장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용 악화다. 올해 들어 실업자 수는 20년 만에 최대이고 실업률은 10년 만에 최고이며 청년 체감실업률은 25%를 넘어 통계를 발표한 이래 최고치다. 60대 이상 고령층과 공공고용만 증가하고 나머지 모든 연령대에서 고용이 급감하고 있다. 특히 주 생산층인 30, 40대의 고용 악화는 심각하다. 창업도 대부분 불황기 실직으로 인한 비자발적 자영업 진입이다.

고용 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은 기업들이 국내 고용을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것뿐이다. 기업 고용은 직접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적 고용이므로 고용과 성장이 동시에 달성되는 양질의 고용이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이 고용에 필요한 국내 투자를 대폭 줄이고 있다. 올해 들어 국내 설비투자가 전년 대비 4% 이상 감소하면서 10년 만에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반면 우리 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사상 최대로 급증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구분 없이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은 IMF 위기 이후 최저지만 해외 투자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의 열악한 경영 환경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이 최근 우리 기업들 사이에서 급증하고 있다.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면 그만큼 국내 고용과 세수는 감소하므로 한국은행 총재도 우려를 표명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반대로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이 본국으로 되돌아오는 ‘리쇼어링(re-shoring)’이 급증하고 있다. 대표적 예가 미국인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리쇼어링 정책 덕분이다. 고용 효과가 큰 제조업의 부활을 목표로 법인세를 대폭 인하하고 특허를 신속 처리하며 국내 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고, 기업들이 원하는 숙련공을 대규모 양성하며 에너지와 원자재를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특별 조치를 시행해 미국 내 생산원가를 대폭 낮췄다. 이에 호응해 많은 기업들이 미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2009년 오바마가 리쇼어링 정책을 시작한 이래 미국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해외 투자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 그 결과는 양질의 일자리 급증으로 연결되어 미국 경제의 활성화를 선도하고 있다. 리쇼어링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으로 독일, 일본 등 선진 산업강국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추세다.

그런데 우리만 정반대로 기업들이 해외로 탈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국내의 경영 여건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기업을 타도해야 할 적폐세력으로 몰고 투자 활성화 법안은 언급만 해도 친재벌로 매도되며 대부분의 정책이 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환경에서 기업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반면 이들이 베트남 등 해외에 투자하면 국가적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영권 보호는 세계에서 가장 취약하다. 상속세율이 너무 높고 자기주식 취득에 대한 제약도 심해 경영권을 지키려고 차명계좌 등을 이용하다 많은 기업가들이 전과자가 된다. 이에 비해 좌파적 성향이 강한 독일이나 스웨덴 등에서는 고용을 유지하고 배당소득 중 상당 부분을 기부하면 상속세를 면제해주고 지배주주에게 일반 주식에 비해 수십배의 의결권을 부여해 경영권 방어를 걱정할 필요 없이 고용과 투자 확대에 전념토록 하는 지혜로운 사회적 합의를 실시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경영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보니 기업가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해외로 탈출을 시도하거나 기회만 있다면 사업을 접겠다고 한다.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에 비해 100년 늦게 출범했지만 불굴의 기업가정신으로 온갖 역경을 딛고 기적적 성장을 이뤄냈다. 그런데 그 기업가정신이 지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복지에 필요한 예산도 모두 기업들이 번 돈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고의 복지는 양질의 고용이다. 기업이 무너지면 고용은 물론 복지도 없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해외로 탈출했던 기업들이 돌아오고 새로운 기업을 다투어 창업하고 싶은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