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말아야 할 손님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이 우리나라에 왔다. 처음이다.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100여년 전 영국의 수의병리학자 몽고메리에 의해 알려졌다.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치사율이 높은 돼지의 열성전염병이다. 돼지과 동물에만 걸리며 급성, 열성, 출혈성을 동반한다. 이 질병이 타 지역에 발을 디딘 건 1960년도 전후다.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유럽과 쿠바 브라질 등 중남미 지역에 전파되면서 기승을 부렸다. 오랜 기간의 박멸 정책으로 이 지역에서는 박멸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2007년 5월 조지아를 통해 유럽대륙에 다시 상륙하면서 동유럽, 러시아 대륙을 휩쓸었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에서 발생하면서 중국뿐만 아니라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북한 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이 질병은 DNA 크기가 매우 크고(200nm) 다양한 유전형을 가진(현재까지 24종의 유전형)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원인체다. 이 바이러스의 병원성은 병원체의 유전자형에 따라 다르나, 최고 100%까지의 폐사율을 나타낸다.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100%의 높은 치사율을 나타낼 정도로 병원성이 매우 강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열에는 약하지만 외부 환경 특히 저온 및 냉동에서 매우 오랫동안 높은 감염성을 유지한다. 토양 등 자연환경에서도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한국은 아프리카돼지열병 유입 가능성에 대비해 많은 준비를 해 왔다. 지난해 8월 중국에서 발생한 이후에는 국경 검역 및 국내 위험 지역의 예찰 강화 등 유입 차단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지난 17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첫 발생 보고가 나왔고 연천군 김포시 등 경기 북부와 인천 강화군을 포함해 현재까지 9건이 발생했다. 최초 2건의 발생 보고(파주·연천) 이후 약 1주일이 지나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매우 빠른 전파 양상을 나타냈다. 이로 인해 강화군의 모든 돼지를 포함해 10만 마리 가까운 돼지가 살처분됐다.
전염병은 발생지역·시기·원인체 등에 따라 확산 속도나 양상이 다양하므로 발생 시 발생 원인을 포함한 역학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방역 당국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최초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추측만 난무하는 실정이다. 언제, 어떻게 유입되었을까.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직간접적으로 원인체인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와 접촉할 경우 전파가 이루어진다. 즉 감염된 동물 또는 감염된 동물과 연관된 축산물과의 접촉에 의해 직접 전파되거나, 감염된 동물이 보유한 바이러스가 다른 매개체(차량, 사람, 야생동물 환경, 곤충 등)에 의해 전파될 수 있다.
현재 국내 발생은 북에서 유래한 임진강변 접경지역과 강화도에 한정돼 있다. 지난 5월 북한 지역에서의 발생, 평북 지역의 많은 수의 돼지 폐사 등으로 유입원에 대해 한 곳으로 초점을 맞추는 듯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첫 발생 전후한 국내외 상황, 첫 발생 및 원인체의 특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역학적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잠복기는 짧게는 3~4일에서 길게는 약 3주까지다. 전염병이 처음 유입됐을 때는 대부분 매우 적은 양의 병원체들이 유입되기 때문에 잠복기가 길고 임상 증상도 약할 수 있다. 농장주나 관리인들이 질병 발생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질병 및 원인체의 특성을 바탕으로 처음에 발생한 농장을 찾는 것이 역학조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발생 원인(유입원)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다.
일단 현재는 국내에 발생했기 때문에 철저한 소독, 동물 및 관련 차량·사람들의 이동통제를 통해 확산을 최대한 저지하는 게 최우선이다. 방역 당국을 필두로 위험도를 심각 단계로 격상하고 모든 관련 부처들이 협력해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성과가 있어야 한다. 이번 발생을 진정시킨 후에는 이번 질병에 대한 중장기적 대책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돼지과 동물에만 감염되고 사람에는 감염되지 않는 질병이다. 국민들은 안심하고 국내 돼지고기 소비로 여러 면에서 힘든 양돈 농장들을 도와주는 것도 방역의 한 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한상(서울대 교수·수의과대학 전염병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