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내각은 소비세 인상 이후 정권 붕괴로 이어져온 ‘소비세의 저주’를 피할 수 있을까.
일본에서 10월 1일부터 소비세가 8%에서 10%로 2% 포인트 오른다. 소비세는 물건·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이 내는 간접세로 한국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9월까지 100엔짜리 물건을 살 때 108엔을 냈다면 10월부터는 110엔을 내야 한다. 물건값이 올라가는 셈이어서 지난 수주간 일본에선 쇼핑 붐이 불었다.
하지만 ‘선행 소비’는 소비세율 인상 후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아베 총리가 당초 2015년 10월로 예정됐던 4차 소비세율 인상을 2017년 4월, 올해 10월로 두 차례 미룬 것도 그 때문이다. 증세가 경기 침체로 이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2012년 12월 2차 집권한 아베 내각 이전까지 소비세 도입 및 인상은 예외 없이 해당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1989년 소비세(3%)를 처음 도입한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은 리크루트 비리 스캔들까지 겹쳐 3개월 후 참의원 선거에서 패해 실각했다. 97년 5%로 소비세를 끌어올린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도 이듬해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물러났다.
민주당 정권 시절이던 2012년 노다 요시히코 총리도 소비세 증세를 추진했다. 당시 자민당·공명당 등 야당과 함께 기존 5%인 소비세를 2014년 4월부터 8%, 2015년 10월부터 10%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노다 총리의 민주당 정권은 그해를 못 넘기고 자민당에 정권을 내줬다.
2차 아베 내각은 민주당 시절 결정에 따라 2014년 8%로 세율 인상을 단행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강력한 부양책으로 회복세를 띠던 일본 경제는 소비세 증세 이후 한동안 침체를 겪었다. 이 경험 때문에 아베 내각은 10% 인상은 애초 계획보다 4년이나 늦췄다. 이전 경험을 교훈 삼아 경감세제 도입 등 다양한 보완책도 마련했다.
간접세인 소비세는 서민층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역진성(逆進性)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따라 아베 내각은 기호품을 제외한 음식료품 등은 기존 8% 세율을 유지키로 했다. 내년 6월까지는 중소 매장에서 신용카드 등으로 지불할 경우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최대 5% 환원해 준다. 또 저소득층과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는 25%의 추가 구매가 가능한 프리미엄 상품권을 줄 예정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번 소비세 인상으로 연간 4조6000억엔의 추가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 아베 내각은 이를 활용해 10월부터 3∼5세 유아교육의 전면 무상화와 저소득층 0∼2세 보육의 무상화를 시행한다. 내년 4월부터는 소득에 따라 대학·전문학교 등의 수업료·입학금을 감면해 주는 고등교육 무상화 제도를 도입한다. 그리고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간병보험료 경감 재원으로도 쓸 예정이다. 세수 증가분 대부분을 재정적자 해소에 사용하지 않고 지지율을 노린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아베 내각의 소비세 인상은 일본 경제의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최근 몇 년 사이 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 등에 따른 엔고 현상으로 출구가 안 보인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한·일 통상갈등에 따른 영향도 일본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장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