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먼저 손 내밀자” 日 온건파들 목소리 내지만…

입력 2019-09-30 04:07
지난 6월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를 나눈 뒤 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의 일본 제품·관광 불매운동으로 예상을 넘어선 타격이 이어지자 일본 정계에서 유화적인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일본 정계에서 그동안 강경파의 눈치를 보던 온건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계산된 제스처일 뿐 아직 실질적 변화는 없는 상태다.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 자민당 간사장은 지난 27일 위성방송인 BS TV도쿄의 프로그램 녹화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해 “원만한 외교를 전개할 수 있도록 한국도 노력할 필요가 있다”면서 “우선 일본이 손을 내밀어 양보할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 내 반한 감정이 고조된 상황에서 집권정당인 자민당의 핵심 정치인이 한국에 대한 양보를 강조한 건 이례적이다. 자민당 당직에서 간사장은 총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자리다.

하지만 니카이 간사장은 “우리(일본)는 더 어른이 돼 한국의 주장을 잘 듣고 대응해나가는 도량이 없으면 안 된다”고도 말해 한국을 낮게 보는 속내를 드러냈다. 앞서 일본 우익들이 한국에 대해 “시끄럽게 구는 버릇없는 아이”라면서 한국을 아이, 일본을 어른으로 묘사해 왔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니카이 간사장은 그간 일본 정계의 대표적 지한파로 알려졌지만 지난달 한국 국회 방일단의 만남을 거부하는 등 아베 신조 총리의 강경기조에 발을 맞춰왔다. 그가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인사에서 유임된 것은 아베 총리와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자민당 정관을 바꿔 아베의 총리 3연임에 앞장섰던 그는 최근 4연임을 위한 물밑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포스트 아베는 아베”라고 주장하는 등 아베의 4연임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그런 그가 한·일 관계 개선이나 일본의 양보를 언급한 것은 한국 내 일본 제품 및 여행 불매운동으로 일본 경제에 타격이 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8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축제 한마당’에도 일본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한·일 양국의 민간교류가 계속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아카바 가즈요시 국토교통상은 “한국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은인의 나라”라는 말까지 했다.

관광담당 수장인 아카바 국토교통상은 개회식에서 서툰 한국어로 자기소개를 한 뒤 “최근 양국 정부 간 문제가 생겨 8월 방일 한국인 여행객 수가 전년과 비교해 48% 감소하는 등 양국 인적교류 축소가 매우 가슴 아프다”면서 “정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민간교류가 활발하다면 양국 우호관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일본)는 한국인 여러분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사사키 사야카 문부성 정무관,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 등도 민간교류가 위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표명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나 수출 규제 강화 등 최근 한·일 갈등 현안에 대해서는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거나 ‘수출 규제는 징용 판결과 무관하다’며 한국에 책임을 돌리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 사안의 영향으로 일본의 피해가 커지자 민간교류는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 관광객을 다시 늘려 자국 피해를 줄여보겠다는 계산적인 행보로 해석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