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아동학대범에 집유라니… ‘솜방망이 판결’이 낳은 비극

입력 2019-09-30 04:03
의붓아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해 숨지게 한 계부 A씨가 29일 인천미추홀경찰서 로비에서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5세 아이를 무자비하게 폭행해 숨지게 한 계부는 수년째 의붓자식들을 때려온 상습 아동학대범이었다. 심지어 2년 전에도 같은 아이를 바닥에 세게 던져 재판에 회부됐음에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바람에 이번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법조계 일각에선 “온정주의에만 치우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2차 범행을 낳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을 학대하는 가정폭력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사법 당국의 관행이 만든 비극”이란 지적도 나온다.

인천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는 의붓아들 계부 A씨(26)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당초 A씨에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하려다, 그가 목검으로 B군의 배까지 찌른 점을 확인한 뒤 적용 혐의를 바꿨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5일 인천 미추홀구 자신의 빌라에서 B군을 묶어 놓은 채 1m 길이의 목검으로 마구 때린 혐의를 받고 있다. 25시간가량을 폭행한 뒤 B군이 숨을 쉬지 않자 26일 밤 10시에야 119에 신고했고, 경찰과 119구급대가 집에 도착했을 때 A군은 눈 주변과 팔다리에 심한 타박상을 입은 채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앞서 B씨는 2년 전 아동보호법 및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선고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2017년 1월 13일 자신의 집에서 세살에 불과하던 B군의 얼굴을 심하게 때리고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한 혐의였다. 같은 해 3월 2일에는 웅크리고 잔다는 이유로 B군의 다리를 들어올린 뒤 바닥에 내리쳤으며, 이틀 뒤엔 당시 두살이던 B군의 동생도 놀이방에서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폭행한 사실도 포함됐다.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 범행조차 부인하며 뉘우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동종 또는 집행유예 이상의 전과가 없고 피해 아동 어머니가 가정생활 유지를 원하며 피고인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 이번에 한해 선처하기로 했다”고 판시했다.

이후 두 의붓아들은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A씨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보육원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A씨는 친모인 C씨와 함께 이들을 집으로 데려갔다. 보호기간이 만료됐는데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연장신청을 하지 않으면 부모에게 인계된다는 이 법 규정 때문이었다.

이렇게 집으로 돌아온 B군은 계부 A씨로부터 성인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폭행당해 숨진 것이다. A씨는 이번 사건에서도 “자꾸 거짓말하고 말을 듣지 않아 화가 났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데 급급한 셈이다. 아내 C씨는 “나도 폭행당한 상태에서 (남편이) ‘경찰에 알리면 다 죽이겠다’고 해 무서워 신고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우리나라는 유독 가정폭력에 대해 관대한 편”이라며 “사법부와 수사기관 모두 좀 더 적극적인 양형과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른 변호사는 “집행유예를 받은 자가 또 유사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데도, 이 기간에 대한 감시와 제한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성범죄자가 전자발찌를 차듯 (집행유예 기간인 범죄자도) 특정한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고 했다.

경찰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 때문에 다 얘기할 수 없지만 피의자는 폭력전과가 아주 많다”면서 “목검으로 갸냘픈 아이의 배를 찌르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알았을 것으로 보고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고 했다. B군의 직접적인 사인(死因)은 복부손상이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