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준엽] 중재가 필요한 LG-SK

입력 2019-09-30 04:04

올해 4월 ‘세기의 소송전’이 허무하게 마무리됐다. 수년째 갈등을 빚던 퀄컴과 애플이 소송이 시작되려는 찰나에 전격 합의를 했다. 소송 규모는 300억 달러(약 34조원)로 지적재산권 관련 소송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지면 둘 중 하나는 치명상을 당한다는 우려에도 양사는 각을 세우며 소송에 뛰어들었다. 때문에 급작스러운 합의에 모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양사의 갈등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을 반독점 위반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애플 측이 퀄컴에 불리한 증언을 하면서 표면화됐다. 스티븐 몰렌코프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분노했고 애플이 퀄컴과 계약을 어기고 아이폰7에 인텔 모뎀을 썼다는 이유로 리베이트 지급을 중단했다. 애플은 스마트폰 도매가 5%를 로열티로 받는 퀄컴의 계약이 과도하다며 소송을 걸었고 퀄컴은 맞소송으로 대응했다. 팀 쿡 애플 CEO는 “몰렌코프가 퀄컴 CEO로 있는 한 합의는 없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갈등은 첨예했다. 당시 합의를 두고 5G 진입이 늦어질 것을 우려한 애플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가 큰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었다. 애플이 5G 진입을 위해 퀄컴 대신 중국 화웨이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트럼프가 양사를 중재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G는 미국이 이겨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퀄컴과 애플 문제를 해결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화웨이 제재를 시작하면서 5G 기선제압을 하는 중이다.

5개월 전 사건의 조각을 다시 맞춰본 것은 점점 격화하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의 소송 해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LG화학이 영업비밀 침해로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소송을 걸었고, SK이노베이션은 특허 침해로 LG화학을 제소했다. 그러자 27일 LG화학은 특허 침해로 SK이노베이션에 맞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도 이제는 대화보단 소송으로 끝을 보겠다는 분위기다. 소송은 글로벌 기업이 특허 보호, 사업상의 이유 등으로 수시로 사용하는 일종의 경영 수단이다. 그 때문에 소송을 통해 경쟁사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걸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다만 우려되는 건 국가 경제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소송 장기화에 따른 손해가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이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우리나라가 반도체 이후 글로벌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중국 시장은 중국 정부가 한국 업체만 겨냥해 보조금을 주지 않아 사실상 진입이 어려운 상태다. 국내 업체들도 중국은 접어두고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공략 중이다. 그런데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소송의 무대로 삼은 곳이 미국이다. 소송으로 결론이 날 경우 둘 중 하나는 미국 사업이 불가능해진다. 최악의 경우 양사 모두 서로의 특허를 침해한 사실이 인정되면 둘 다 미국 사업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유럽은 유럽끼리 뭉치고 있다. 폭스바겐이 스웨덴 노스볼트와 전기차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 공장을 짓기로 했고 프랑스와 독일 정부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전기차 배터리 공동 개발에 나선다.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해지는 분위기라 이런 경향은 점차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문제는 이제 단순히 ‘개별 기업 간 소송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위기’라는 시각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더 이상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상황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양사의 입장을 경청하고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보호무역주의가 점차 강화되는 환경에서 우리끼리 ‘내전’을 벌이다 뒤처지는 걸 정부가 방관해서는 안 된다. 두 회사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모두 같다. LG화학이나 SK이노베이션 둘 중 하나가 이기는 싸움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두 회사 모두 ‘윈윈’ 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소송 문제를 빠른 시간 내에 원만히 해결하고 글로벌 업체와 경쟁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