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일명 ‘문재인 케어’ 지속 시행을 위한 과제로 거론되는 건강보험 재정확충 방안에 대해 의료계, 시민 및 환자 단체, 산업계가 머리를 맞댔다.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11층 국제회의장에서 쿠키뉴스 주최, 쿠키건강TV 주관으로 열린 ‘보장성 확대를 위한 보험재정 확충 좌담회’에는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공동대표 ▲대한병원협회 서인석 보험이사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이영신 부회장 등이 참여했다.
지난 8월26일 정부와 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내년도 건강보험 국고지원 예산을 1조원 이상 증액하고 2020년 보험료 예상수입의 14%를 지원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법이 정한 20%에 미치지 못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왔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을 통해 ▲적정 수준의 보험료율 인상 ▲안정적 국고지원 확보 ▲불필요한 지출관리 강화 및 제도개선 ▲선제적 재정관리 추진안을 제시, 건보 재정 안정화 정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케어의 지속 추진을 위해 보다 장기적인 재정 대책이 시급하다는 여론은 여전히 높다.
좌장을 맡은 정형선 교수는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비용부담이 적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면서도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인한 재정 불안이 커지고 있다”고 말해 건보 재정 안정화 방안 마련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건세 김준현 대표는 재원조달방법의 공정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가입자 등 한쪽에만 재원 부담이 늘어나면 국민들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것”이라며 “현재 재원조달에 있어 총재정의 88%를 가입자가 감당하고 있어 전체 건보 수입 중 국민들의 부담 비중에 비해 정부의 부담은 이전 정부보다 더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국민들은 보험료를 성실납부하고 있지만, 과연 국가는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는 비판이다.
김 대표는 국고지원이 보험료 예상 수입의 20%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언제까지 국민들이 납부하는 보험료에만 의존해 건보재정 안정화를 꾀할 것이냐”며 “현재의 6%대 보험료율은 향후 8% 상한선에 이르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 국민 불만은 더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상가상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현상 심화는 근로자 및 사업자 소득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가입자가 매달 내는 보험료 외에 타 재원조달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병협 서인석 이사는 명확한 건보 재정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 이사는 “건보 재정을 선진국 수준으로 조성하겠다는 구체적 목표치가 있어야 명확한 재정전망 계획이 나올 수 있다”며 “소모적 논쟁보다 관련 법적 근거를 마련해 건보재정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오는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상황에서 건보재정을 수입만으로 마련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식품에 대한 과세 논의가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해 간접세 부과 필요성을 제안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는 이른바 ‘정크푸드 택스’를 도입하고 있다. 세수 확보 및 건강에 해로운 음식의 소비를 줄이는 부수적 효과를 얻기 위한 조치다.
서 이사는 외국인 건보부과체계 변경과 관련해 “외국인에 대한 건보 지출 현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진료를 목적으로 한국에 오는 소위 ‘의료쇼핑족’에 대한 탄력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반면 지불제도 개편에 대해서는 “7개 질병군 뿐만 아니라 신포괄수가제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불제도에 손을 대면 의료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신중한 입장을 폈다.
환자단채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건강보험 재정이 수많은 환자의 생명줄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환자들은 신약 및 새로운 의료기술의 신속한 접근이 절실하다. 돈이 많다면 모를까 소시민들은 건보재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건보재정 안정화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국고 지원과 관련해 “2007~2018년까지 21조원이 미납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획재정부는 의무 지원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국고지원 보장을 법제화하는 관련 법안이 발의돼도 국회 본회의 통과가 번번이 좌절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정적인 건강보험 재정 지원을 위한 법체계 확충은 요원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과거 건강보험료 부과에 대한 형평성 논란을 거론하며 “직장가입자는 건강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하지만, 지역가입자는 재산을 숨겨 적게 낸다고 해 논란이 됐었다. 지난해 개편에 이어 2022년에도 부과체계 개편이 예정돼 있다. 그러나 면제 감액이 많다보니 부과체계 개편으로 수입이 늘지 않는 형편”이라고 지적, 합리적 부과체계 개편을 촉구했다.
산업계는 합리적 수입 및 지출 방안을 통해 건보재정의 내실화를 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KRPIA 이영신 부회장은 “정부의 장기적 계획 수립은 고무적이고, 2019~2023년까지의 재정 방안에 대한 정부의 기조를 산업계는 찬성한다”면서도 “현재 건보 수입은 국민 및 사용자가 부담하는 보험료와 국고지원이고 지출은 가격과 양이 혼재돼 있다”고 밝혔다. 수입과 지출 관계 개선보다 지출을 압박해 줄이는 경향이 많았음을 지적한 것이다. 특히 바이오제약산업과 관련해 “수차례의 약가 인하 등을 통한 지출압박으로 재정 확보를 추구하기 보다는 합리적 수입 증대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새로운 수입 창출을 위해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제약 분야를 더욱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오헬스 산업계의 몸집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안정적 수입원 확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의 단기 적자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형선 교수는 “법에 따라 국고지원이 충실히 이뤄지려면 현재처럼 건보재정이 필요이상으로 쌓여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최근 일고 있는 단기적자에 대한 지나친 경계 및 공포 조장에 문제가 있음을 비판한 것.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이영신 부회장은 “과연 정부가 건보 적립금으로 20조원을 쌓아둘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사회보험으로써 건보의 향후 5년간의 로드맵에 적립금의 합리적 지출 및 추가 수입 방안을 구체적으로 명시, 건보재정이 예측가능하다면 세간에 일고 있는 불안감 해소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기종 대표도 역시 “건보 단기적자는 3조원이 채 안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조원의 누적흑자가 있다 보니 정부는 국고지원 강화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입장을 같이했다. 그는 “우리사회는 단기 적자를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며 “적자가 나면 당장 기재부는 적자분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만 골몰한다.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더 부담시킬지, 국가재정을 더 투입할지 고민하는 새에 본질은 흐려진다”고 비판했다. 정리하면 건보재정은 안정화되어 있는 만큼 단기적자에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무의미하단 지적이다.
김준현 공동대표는 적립금이야 말로 곧 정부의 지출 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20조원의 흑자는 제대로 된 지출관리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을 남긴다”며 “국민의 의료이용 증가속도가 떨어져 재정이 남은 것이며, 국민들의 성실납부로 보험료가 쌓인 것인 만큼 여유분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건보공단은 적립금을 과도하게 유지하려는 입장인 반면, 기획재정부는 꼭 20%를 달성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모양새다. 지출부분이 명확하게 예측이 안 되고 수입도 엉성하게 되다보니 과도하게 보험료 납부하는 경우도 많다”고 비판했다.
서인석 이사는 건보 지출 증가에 주목했다. 그는 “지난 2017년 정부의 건보재정 계획에서는 누적흑자 20조원 중에 10조원은 소진할 것으로 전망됐었다. 기본 로드맵을 지켜간다면 큰 문제가 없지만, 지출 속도가 너무 빠르다면 조절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누적 및 재정 흑자 발생 시 국민 건강 향상 방안을 고려해야 하는데, 기재부의 보수적 스탠스가 국민들로 하여금 납부 대비 혜택은 적다는 불만을 심어준다”고 말했다.
좌담회 말미 정형선 교수는 “보험료율이 올해는 6.4%, 내년은 6.7%인데 이러한 증가속도가 이어지면 2025년 정도에 8%에 도달하게 된다”며 “8% 상한에 대한 법 개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가입자에게 부담을 늘리면서 재정 확보를 할 것인지 국고지원을 더 늘릴지 등 재원 마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좌담회는 쿠키건강TV로 방송되며, 내달 2일에는 ‘재정누수요인 관리 및 제도개선을 통한 지출 합리성 확보 등의 지출 관리 강화 방안’을 주제로 두 번째 좌담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노상우 쿠키뉴스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