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키아프… 손님 늘고 카펫 깔았지만 디테일선 미숙

입력 2019-09-29 18:09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 개막한 한국국제아트페어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문을 연 지 30분이 지났는데, 매표소 앞엔 줄이 이어졌다. 갤러리 부스마다 관계자들은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구경만이 아니라 작품을 사려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국내 최대의 미술장터인 제18회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이하 키아프)가 이날 공식 개막해 현장을 찾았다. 29일까지 이어진 올해 행사에는 17개국 175개 화랑이 참여했다. 현대갤러리 도형태 대표는 “전날 VIP 프리뷰 행사부터 컬렉터들이 꽤 왔다. 판매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리안갤러리, 학고재갤러리, 가나아트갤러리 등 대부분의 갤러리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오후가 되자 손님들이 점점 불면서 열기가 느껴졌다.

키아프는 지난해 미국 최대 갤러리인 데이비드 즈워너가 시험 참가하고, 공간 인테리어도 고급화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올해는 기존 페이스갤러리에 이어 뉴욕·홍콩 기반의 리만머핀 갤러리가 처음 참가했다. 페이스가 야심작으로 가져온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의 평면 설치 작품 ‘아틀란티스’(8억4000만원)는 명상용 방처럼 꾸며져 관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올해 가장 비싼 작품은 국제갤러리의 김환기 작 반추상회화 ‘정원’(60억원)이었다. 학고재는 강요배, 윤석남 등 민중미술 작가군을 들고 나왔다. 1960~70년대 행위예술이 주목받으며 몸값이 올라가는 이건용 작가는 갤러리현대, 리안갤러리, 페이스갤러리 등 3개 갤러리에 작품이 나란히 걸려 화제가 됐다.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도 곳곳에 보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기반의 시메이갤러리에서 대형 TV 설치 작품 ‘걸리버’가 가장 비싼 100만달러(12억원)에 나왔다. 학고재갤러리는 윤석남 작가의 드로잉 연작을, 조현화랑은 김종학 작가의 과반(果盤) 그림 연작을 각각 100만~300만원에 내놓아 초보 컬렉터들에게 인기몰이를 했다.

2002년 출범한 키아프는 올해 시험대에 올랐다. 2008년 생긴 후발주자 아트바젤 홍콩이 아시아 최대 아트페어로 올라서면서 밀렸으나 최근 홍콩의 정치 불안이 장기화되면서 위기와 기회의 기로에 놓였다. 이런 가운데 아트바젤 홍콩 창설 멤버였던 매그너스 렌프루 측이 2021년 서울에서 국제아트페어를 추진 중인 것도 긴장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사진에서 보듯 카펫의 이음매를 유리 테이프로 붙여 시선을 분산시킨다는 지적을 듣는 등 운영의 미숙함도 눈에 띄었다.

주최 측인 화랑협회는 전시장 쾌적도를 높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부스 가벽을 지난해보다 두껍게 하고 복도 폭도 넓혀 고급스러운 느낌을 강화했다. 디테일에선 미숙함이 드러났다. A홀의 경우 바닥에 광택이 나는 페인트칠을 해 그림이 바닥에 비치는 역효과가 났다. 때문에 일부 화랑은 추가 비용을 들여 고급 카펫을 깔아야 했다. B홀의 경우 페인트칠 대신에 일반 카펫을 깔았는데, 이음 부위를 넓은 유리테이프로 덮어 원성을 샀다. A갤러리는 “반사되는 유리테이프가 관람 집중도를 낮춘다. 외국에선 양면테이프를 써서 이를 감춘다”고 지적했다. 일부 갤러리에선 작품 아래 작가명을 큼지막하게 쓰는 구태가 이어졌다. 웅갤러리도 그랬는데, 이 갤러리의 최웅철 대표는 화랑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아방가르드한 동시대의 조각과 설치 미술 작품을 복도에 설치하는 섹션이 올해는 사라졌다. 최 회장은 “시간 제약상 기존 작품을 가져와야 해 의미가 적다고 판단했다”며 “대신 이대원 천경자 도상봉 등 근대 작가를 조명하는 특별전 ‘한국 근대회화, 역사가 된 낭만’을 마련했다. 구상회화에 익숙한 초보 컬렉터들의 심리적 문턱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B갤러리 관계자는 “해외 컬렉터들에게 한국 동시대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장소였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금 1억원도 올해는 삭감됐다.

글·사진=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