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분담금 6조원 요구한 듯… 한·미 방위비 협상 난항

입력 2019-09-27 04:05

외교부는 내년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의 부담액을 정하는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이 연내 타결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미국과 인상폭을 최소화하려는 한국 간에 입장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국의 청구서를 조목조목 따지기 위해 협상 대표를 기획재정부 출신 경제관료로 교체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26일 기자들과 만나 “(연말까지) 3개월 안에 11차 SMA 협상 타결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타결이 가능해지려면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는 지난 24∼25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국방연구원에서 11차 SMA 체결을 위한 1차 회의를 열었다. 첫 회의부터 미국 측의 강한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미는 지난 3월 10차 SMA 협상에서 분담금 총액을 1조389억원으로 합의했다. 10차 SMA 협정문 유효기간은 올해까지로, 원칙적으로 연내에 협상이 타결돼야 내년부터 11차 협정문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총액을 놓고 양측의 이견이 커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정확한 액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직간접 비용으로 50억 달러(약 6조원)가 소요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분담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50억 달러는 주한미군 인건비와 핵추진잠수함, 전략폭격기(B-52, B-2) 같은 전략자산 전개비용 등이 모두 포함된 액수일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주한미군 인건비와 전략자산 전개비용까지 부담하려면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해야 한다. SOFA에는 한국이 주한미군에 시설 등을 제공하고, 그 외 한국 내 미군 유지에 따른 모든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도록 규정돼 있다. SMA는 1991년부터 이에 대한 예외적 조치로서 비용의 일부를 한국 측이 분담하기 위해 체결된 것이다.

미국은 10차 SMA 협상에서도 전략자산 전개비용 등을 포함하는 ‘작전지원(Operational Support)’ 항목 신설을 요구해 우리 측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번 11차 SMA 협상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SMA는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군수지원, 군사건설 등 3가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는 이날 11차 SMA 협상 대표에 정은보(사진)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정 신임 대표는 기재부 차관보,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등을 역임한 전문 경제관료 출신이다. 외교부와 국방부 출신이 아닌 인사가 방위비 협상 대표를 맡은 것은 처음이다. 숫자에 밝은 중량급 인사를 내세워 미국의 ‘증액 명세서’를 꼼꼼히 따져보고 깐깐하게 맞서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정부가 정 대표를 선임한 것은 미국이 주장하는 주둔비용 금액의 근거부터 따져보겠다는 의도”라며 “다만 기존 SMA 협상을 주도해온 외교부와 국방부에 대한 문재인정부의 불신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상상 초월의 액수를 제시해 기존 틀을 완전히 흔들면서 우리 정부도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정 대표를 임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