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나래]] 이제는 조국 사태의 수습을 생각할 때

입력 2019-09-27 04:05 수정 2019-09-27 17:32

칼럼의 문패가 ‘세상만사’이니 가능하면 다른 주제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50일간 삼켜버린 ‘조국 블랙홀’에서 헤어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26일은 조국 법무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 처음 출석한 날. 국회는 이날도 조 장관을 놓고 난타전을 벌였다.

지난 8월 9일 조 장관이 지명된 뒤 50일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들이 조국 발(發)로 쏟아졌다. 사람들은 사회적 계층, 진보냐 보수냐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자기만의 문제의식을 표출했다. 대물림하는 특혜와 특권에 대한 분노, 교육의 공정성 담보 문제, 검찰의 수사 행태 및 검찰 개혁, 언론의 보도 행태와 가짜뉴스 논란, 인사청문회 제도와 공직자 윤리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러한 상황을 ‘그럼 당신은 조국 찬성이요 반대요’, ‘그러니 당신은 자유한국당 지지자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요’와 같은 이분법적인 질문으로 덮고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사상 초유의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까. 민주당 이해찬 대표마저 “검찰도, 정부도, 당도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 수습 자체가 쉽지 않은 엄중한 상황”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단답형 답변만 찾지 않는다면, 한데 얽히고설킨 문제를 하나씩 떼어내 시간을 갖고 풀어보려 한다면,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뒷짐 지고 있는 게 아니라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보면 어떨까. 조 장관이 계속 업무를 수행할지는 결국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달렸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의 여론을 수렴하고, 향후 국정운영 방향 안에서 정치적 책임과 부담을 안고 결단할 문제다. 쉽진 않겠지만 결국 그렇게 풀어야 할 문제다. 검찰 개혁 문제는 조 장관 거취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사법 개혁 과제가 국회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여야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련 법안을 20대 국회의 마지막 사명이라 생각하고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과도한 수사권 남용과 피의사실공표 문제는 반드시 매듭지어야 할 과제다. 특히 조 장관 가족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폭력성과 무도함에 대한 비판에 검찰은 어떻게든 책임지고 조직 차원의 변화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피의사실공표 역시 시대적인 상황 변화에 맞춰 법조계를 중심으로 각계 의견을 수렴해 새로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인사청문회와 장관 임명 과정에서의 검증 문제는 국회가 주축이 돼 풀어야 할 문제다. 교육 공정성 담보 문제는 이날 교육부와 민주당이 당정 협의를 통해 발표했듯이 교육 당국이 중심이 돼 해결해야 한다. 언론의 과다 보도와 가짜뉴스 논란은 언론계와 학계가 진지하게 성찰할 사안이다.

이렇듯 분명한 실체가 있는 논쟁거리보다 이중잣대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일상화가 불러온 공정 가치의 훼손이 가장 수습하기 어려운 문제는 아닐까. 최근 만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지역의 10대 학생들이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게 내로남불이었다며 해줄 말이 없더라고 했다. 정파의 이익을 위해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위선을 위선이 아니라 주장하며, 그때그때 말 바꾸는 진보 진영 엘리트 어른의 모습에 청년세대는 마음을 다쳤다. 상대적 윤리의 잣대를 앞세워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 버리려 한다면, 정말 한국 사회 공공 분야의 도덕적 기준이 한참 후퇴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요직을 차지한 어른들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자기 성찰을 하고 자기 개혁에 나서야만 비로소 ‘내로남불의 일상화’를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 ‘386 세대’가 진정성을 갖고 자신의 기득권을 먼저 내려놓는 모습을 보일 때, 우리 다음 세대에게 내로남불이 일상화된 사회를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2019년 조국 사태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 아직 넘어야 할 고비가 많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조국 정국’, 이 시간이 훗날 ‘광기의 시간’으로만 기록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유의미한 시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이 사태의 수습을 시작해야 한다.

김나래 정치부 차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