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스무 살 차이인 큰 형님은 장손이라 대학까지 나와 직업 군인이셨고, 셋째 형님은 서울에서 장사했다. 둘째 형님과 나는 농촌에서 허리도 펴지 못할 정도로 매일 힘든 일에 시달렸다. 너무 힘들어 돼지 판돈을 훔쳐 친구와 함께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역에서 지게꾼 말에 따라 지게를 사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일주일 내내 진눈깨비가 내려 일도 없이 돈만 까먹었다. 둘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쪽방에서 견디었지만 일주일 만에 돈도 다 떨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늦게 결혼을 했지만 방 얻을 돈이 없어 각자 살다가 월세를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직장은 쉽게 구했지만 정착을 못 해 스무 번 넘게 일터를 옮겼다. 마지막에는 차를 사 채소 장사를 시작했는데 장사에도 소질이 없어 결국 쫄딱 망했다. 할 일 없이 잠깐 쉬는 동안 어쩌다 노름판에 끼어들었다가 차 판 돈도 몽땅 잃었다. 너무 허무해 아내가 다니는 집 앞 교회에 찾아가 사정 얘기를 하고 새로운 각오로 기도원에 들어갔다.
그러다 택시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일했다. 비번인 어느 날 회사에 놀러 갔다가 과장님과 식사하러 어느 음식점에 갔는데 마침 노름판이 벌어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끼어들었다. 월급 30만원을 받을 때 순식간에 10만원을 잃었다. 본전만 찾아야지 하며 돈을 빌려 결국 100만원을 잃었다. ‘아! 내 인생은 이제 끝이구나’ 하며 내린 눈 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짓 안 하겠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고 다시 들어가 붙어 몇 판 만에 120만원을 땄다. 바로 빌린 돈을 갚고 돌아왔다. 이 일 이후 지금까지의 말술, 줄 담배, 노름을 딱 끊었다. 그때부터 온전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때 춘천 한마음교회를 다니는 큰딸이 툭하면 ‘아빠의 주인은 누구세요?’라고 물었고 나는 ‘내 주인은 나지 누구야!’ 하며 큰소리쳤다. 사실 몸만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근심투성이였던 아내가 딸과 함께 교회에 가면서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쉽게 결정을 못 하다가 딸의 권유에 여름 수련회에 참가했다. 교회는 뜨거운 젊은이들로 가득 차고 찬양은 너무 은혜로웠다. 게다가 파도치는 듯한 공동체의 기도에 그저 감탄만 나왔다.
목사님께서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하나님을 버린 죄인’이라고 하실 때 ‘내가 내 주인이다!’고 외치던 일이 생각나며 가슴이 철렁했다. 말씀 보고, 기도하고, 십일조를 해도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며 불법을 행하는 자가 바로 나였다.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가 되면서 바로 그 엄청난 죄를 회개하고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60년 넘게 살며 처음으로 기쁨과 평강이 넘쳤다. 바다로 떠내려가다 구출된 일, 차에 부딪혀 겨우 살아난 일, 고기잡이배에서 폭풍우를 만났던 일, 빙판길에 차가 뒤집혀 네 바퀴가 하늘을 향했던 일, 폭우에 차와 함께 물이 가슴까지 찼던 일 등 몇 번이고 죽을 수 있었던 나를 살려주시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바꾸어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했다.
3년 전 백내장 수술 후 망막이 손상돼 실명 위기에 이르렀다. 다시 큰 수술로 실명의 위기는 넘겼지만 시력 약화로 택시 영업도 못 하고 글씨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지금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주유하는 분들에게 짧은 시간이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마다 전도지를 들고 나가 하루 20명을 목표로 전도를 한다.
70을 넘긴 나이지만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내겐 항상 젊음의 새 힘이 넘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는 않겠지만 남은 시간을 온전히 주님을 위해 드리며 푯대를 향해 공동체와 함께 오늘도 복음을 전하며 달려갈 것이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다.
이광범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