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가족들을 괴롭혔고 어머니께 손찌검도 했다. 그런 어머니가 불쌍해 열심히 도왔지만 언니는 나와 달리 폭군이었다. 남동생이 이름을 부른다고 머리를 내리치고 목에 칼을 대기도 했다. ‘야, 불 꺼!’ 하면 추운 마루에 나가 시험공부를 했고 ‘물 갖고 와!’ 하면 즉시 시행해야 했다. 어떤 반항도 할 수 없었던 삶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지만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고 외환위기를 맞아 집안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돈을 벌기 시작한 언니는 더욱 권력의 핵심이 됐고 말 한마디에 식탁 메뉴도 바뀌었다. 어느 날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지? 그래,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자! 언니는 무슨 언니? 이제 내게 언니는 없어!’ 하며 7년간 입을 완전히 닫고 침묵시위를 했다.
그러다 가정형편은 나쁘고 미래가 불투명했지만 잘 챙겨주는 남자를 만나 6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언니는 결혼해도 3년간 우리 집에 오지 않았고 아이를 낳아도 전화 한 통 없었다. 그런데 얼마 후 ‘예수님을 만났다’며 어느 자매와 함께 찾아왔다. 자매에게 복음을 들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매주 예배를 드리던 중 한 말씀이 마음에 꽂혔다.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산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내 실상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자매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어요?’라는 말에도 꼼짝할 수 없었다. 자매는 그래서 하나님이 이 땅에 직접 오셨는데 그분이 예수님이고 성경의 예언대로 부활을 증거로 보여주셨다고 했다. 이어서 동생 야고보, 베드로, 도마, 바울 등 부활의 주님을 만난 증인들의 삶을 듣는 순간 ‘아! 부활은 진짜구나! 예수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맞구나!’는 고백이 터졌다. 예수님 앞에 서니 내가 행한 모든 것은 내가 주인 돼 내 뜻대로 한 일이었다. 그분을 믿지 않았던 악랄한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고 내 마음의 참 주인으로 모셨다.
한 맺힌 언니였지만 말씀에 순종하며 언니와의 진정한 동역이 시작됐다. 언니는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를 다니면서 같이 전도했다. 언니의 삶은 매일 내게 충격이었다. 작은 교회 예배에서 언니는 자신이 주인 돼 마귀에게 끌려다녔던 삶을 고백하며 죽기 위해 수면제를 조금씩 모았던 일을 눈물로 간증했다. 7년간 침묵시위를 할 때 언니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자살을 생각했다. 조금만 일찍 예수님을 만났다면 서로 원수로 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늦게라도 우리 자매를 예수님과 하나 되게 해 주신 것이 너무 감사했다. 우리는 이웃에게 명함전도지를 만들어 나누어주며 날마다 복음을 전했고 대학캠퍼스와 병원에 들어가 젊은 영혼들과 위급한 환자를 만났다. 그러다 심장병으로 수술을 앞둔 언니가 갑자기 응급실로 갔다. 심장에 연결한 기계는 계속 경고음을 냈고 언니는 호흡까지 힘들어졌다. 언니를 살려달라고 울부짖어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언니 대신 죽을 수도 있니?’ 하고 물으셨고 나는 즉시 ‘네, 제가 죽어서 언니가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했다. 어린아이도 남편도 생각나지 않고 언니를 살리고 싶은 마음 하나뿐이었다. 예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부어져 밤새 병실을 지키면서도 너무 감사했다. 새벽에 심장은 안정됐고 언니는 예정보다 빨리 수술했다. 나는 매일 병원에 가서 함께 밥 먹고 머리도 감겨주며 쪽잠을 잤지만 그 시간이 내겐 가장 큰 행복이었다.
무엇보다 병실에 계신 분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 너무 감사했다. 심한 당뇨 합병증에 심장 수술까지 하신 분이 ‘이런 내가 살아서 뭐 하나’ 하길래 즉시 예수님을 전했다. 불교 신자라고 처음에는 버텼지만 언니와 끝까지 기도하며 복음을 전해 결국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했다.
우리 집을 오픈해서 예배 때마다 식사를 대접하며 지체들을 섬기며 7년째 언니와 동역하고 있다. 원수였던 우리 자매를 최고의 동역자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임윤정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