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 산모’ 낙태 시킨 의사 다른 병원서 진료… ‘의사 면허 관리’ 또다시 도마위에

입력 2019-09-26 04:06

영양제 주사를 맞으러 온 산모에게 실수로 낙태 수술을 진행한 의사가 다른 대학병원에서 버젓이 진료 중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의사 면허 관리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은 지난달 7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베트남 여성의 동의 없이 낙태 수술을 한 의사 A씨와 간호사 B씨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수사 중이다. 두 사람은 영양제 주사를 처방받기로 돼 있던 임신 6주 여성을 계류유산(죽은 태아가 자궁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 환자로 착각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25일 “두 사람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A의사는 사고 발생 직후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겨 근무 중이다. 온라인 산모 커뮤니티 등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의사가 버젓이 진료를 해도 되나’ ‘내가 가는 병원에 A의사가 있을까 두렵다’ 등 반응이다.

A의사가 진료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면허 정지·취소 등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이 대법원 판결 뒤에야 이뤄지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행정 공무원들은 의료 관련 전문 지식이 부족해 대법원 판결을 본 뒤에야 행정처분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안전 문제를 걱정하는 환자들의 눈높이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다수 선진국에선 우선 자격을 정지한 뒤 판결을 보고 조치를 확정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A의사는 혐의가 ‘과실치상’이어서 면허 취소 가능성이 크지 않다. 관련 법은 면허 취소 요건을 업무상 비밀누설, 허위진단서 작성,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면허 자격 정지 처분을 받더라도 기간은 최대 1년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경우 1년 범위에서 면허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협회는 진상조사를 벌여 판결 확정 이전이라도 두 사람의 환자 안전 관리 책임이 명확해지면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다. 의사협회 차원의 징계도 최대 3년 이하의 협회회원 자격 정지 및 5000만원 이하 위반금 부과 등에 그쳐 실효성이 낮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