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주 오랜 옛날
짜장면 한 그릇이
50원이었던 시절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는 찻길을
일터로 삼은 청년이 있었다
그때는 아직 생기지 않은
남산 힐튼호텔 앞이었다
경사진 찻길 무단횡단이
청년의 일
살피면서 건너면 10원
무조건 건너면 50원
한번은 청년만큼이나 허름한 행색의 중년 남자가
청년에게 50원을 건넸다
그의 고객과 열 남짓 공짜 관객이
보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청년은 눈을 꼭 감고 찻길에 들어서서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중년 남자가 켕기는 목소리로 외쳤다
“조심해!”
하, 조심하라고?!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청년은 계속 눈을 꼭 감았을까
저도 모르게 실눈을 떴을까
지금은 짜장면 한 그릇에
4천원이던가, 5천원이던가
황인숙의 ‘아무 날이나 저녁때’ 중
옛날 옛적에 짜장면 한 그릇 값인 단돈 50원만 쥐여주면 눈을 꼭 감고 찻길을 건너던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을 얼마나 우습게 봤던 것일까. 한 중년 남자는 청년에게 50원을 건넨다. 눈을 뜨지 말고 길을 건너보라는 건데,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인가. 한데 저 시에 등장하는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짜장면 한 그릇 값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이, 짜장면 한 그릇 값으로 사람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인간이 아직 이 세상엔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