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암’ 조현병, 그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입력 2019-09-28 04:02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민들이 2014년 10월 10일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조현병에 대한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벌이고 있다. 신화뉴시스

미국의 저널리스트 론 파워스(78)가 펴낸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가슴이 뻐근해지는 신간이다. 책에는 조현병 자녀를 둔 부모의 절절한 심정과, 정신질환자를 낮잡아보면서 온갖 무자비한 일을 서슴지 않던 인류의 역사가 자세하게 담겨 있다. 아래는 책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의 시점에서 써 내려간 가상의 편지다.



작은아들 케빈한테서 조현병의 기미가 느껴진 건 2002년 1월이었어요. 아들이 열일곱 살 되던 해였죠. 케빈은 어느 날 전화를 걸더니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굴었어요. 환각을 경험한 거였고,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어요. 아들은 2005년 7월 우리 집 지하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그날 이후 초록이 번지는 계절이 다가오는 게 두려웠어요. 어떻게든 시간을 견디고, 아픔을 버티면서 5년을 살았어요. 하지만 운명이란 게 얼마나 얄궂은지 이번엔 큰아들 딘이 조현병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딘은 자신이 메시아라고 떠들고 다니다가 경찰에 잡혀 병원에 이송됐어요. 다행히 딘은 동생처럼 극단적인 선택은 하진 않았습니다. 올해 서른여덟인 딘은 자신을 통제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저는 이 책을 쓰고 싶지 않았어요. 아내에게도 약속했었죠. 우리 가족을 다룬 글은, 조현병에 대한 책은 쓰지 않겠다고. 이유는 간단했어요. 우리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게 싫었으니까요. 아이들의 아픔을 이용한다는 시선을 받는 것도 두려웠어요. 그리고 어떤 독자가 기분이 까라질 게 분명한 이런 책을 읽고 싶겠냐는 생각도 들더군요.

하지만 2014년 1월 한 공청회에 참석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행사에 참여해 절절하게 소신을 밝히는 정신질환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심오한 인간성을 느꼈어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그들을 보려 하지 않았는지 알았고, 침묵은 방조였다는 사실도 깨달았죠. 책을 써서 단순하고, 자명하고, 도덕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강력한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너무나 많은 정신질환자가 잔혹한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진실 말이에요. ‘미친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상대로 병의 희생자들이 부도덕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납득시키고 싶었어요. 딘과 케빈의 삶, 과거 그들의 영혼이 높이 솟구치던 순간을 글을 써서 보존하고 싶었어요.

책은 저희 가족의 신산했던 삶과, 정신질환자를 놓고 벌어진 인류의 갈팡질팡했던 행로를 두루 살펴본 내용이에요. 우선 조현병이 무엇인지 알려드릴게요. 조현병은 뇌에서 충동을 제어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에 문제가 생기면 발생해요. 찢어지기 쉬운 뇌의 얇디얇은 막에 인간의 ‘멀쩡한 정신’이 얹혀 있는 셈이죠. 조현병 환자는 망상의 세계를 경험하거나(양성 증상), 감정이 굳어버리는(음성 증상) 모습을 보이곤 해요. 환자 가운데 50%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해요. 케빈도 그랬어요. 조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케빈은 ‘그 상태’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병세를 설명하길 갈음하곤 했어요.

저는 정신건강에서 조현병의 위치가 육체건강에서 암이 차지하는 위치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조현병은 암처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약탈자예요. 암이 그렇듯 의학이 이렇게 발전했는데도 치료가 쉽지 않죠. 다른 점이 있다면 암 환자는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지만 조현병 환자는 혐오와 공포의 존재가 된다는 점이에요. 인류의 의학 수준은 조현병 정복에 관해선 간신히, 그것도 그 병의 가장자리에 작은 흠집을 낸 수준에 머물고 있어요. 우리는 정신질환에 대해 한심할 정도로 아는 게 없어요. 현재 정신질환과 싸울 빈약한 무기 가운데 그나마 유용한 게 있다면 ‘이른 개입’ 정도예요.

인류가 정신질환자를 그동안 어떻게 대했는지 살펴보니 마음이 아프더군요. 인류 역사에서 정신질환자는 광대와 악마 사이의 어떤 존재였어요. 두려움의 대상이었죠. 정신질환을 앓는 많은 사람은 우리가 느끼는 공포 탓에 고통을 당했어요.

중세 시대에 영국 런던에 세워진 ‘베들럼’이라는 수용소를 아시는지. 이곳에서는 말썽을 일으킨 수용자를 얼음물에 담그거나, 의자에 꽁꽁 묶어놓고 의자를 빨리 돌리는 벌을 주곤 했어요. 이것은 처벌이자 동시에 치료의 성격까지 띠고 있었죠. 문제는 베들럼의 방식을 택한 수용소가 영국에서만 여러 지역에 생겨났다는 점이에요. 인류가 정신질환자를 다룬 방식은 ‘잔혹’ ‘불법’ ‘무신경’ 같은 단어로 요약할 수 있어요.

좋은 의도가 잘못된 결과를 낳은 사례도 있었죠.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정신질환자가 가족 곁에서 살뜰한 치료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면서 이른바 ‘탈수용화’ 프로그램을 가동했는데 성과가 시원찮았어요. 지역 사회로 보내진 정신질환자 상당수가 노숙자나 범죄자가 돼버렸으니까요.


한국어판 제목은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라고 달렸지만 2017년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미친 사람한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No one cares about crazy people)’예요. 저는 여러분이 이 책을 즐기지 않았으면 해요. 상처 입기를, 상처 입어 행동하기를, 이 문제에 개입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저의 사랑하는 아들 딘과 케빈이 견딘 고통이 완전히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게 증명될 테니까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