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시대] 자연장 대표주자 ‘수목장’ 혐오시설 넘어 새로운 가치 만들다

입력 2019-09-26 19:16
수목장은 관리가 편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다. 국립하늘숲추모원의 한 추모목 앞에 꽃이 놓여있는 모습. 산림청 제공

올해는 국내 최초의 국립 수목장림인 ‘국립하늘숲추모원’ 개원 10주년이 되는 해다. 장례문화의 다변화에 따라 다양한 장법(葬法)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이후 수목장은 명실상부한 자연장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수목장을 통해 산림에서 ‘웰다잉’까지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이 점점 퍼지고 있는 덕분이다.

수목장림에 대한 이미지 역시 크게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장례만을 위한 공간에서 공연·캠핑 등 다양한 즐길거리도 제공하는 문화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한때 ‘혐오시설’이었던 수목장림은 산림을 통한 웰빙·웰다잉이 가능한 전천후 시설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국립하늘숲추모원 개원 10년

“엄마가 우리 가족 곁을 떠난 지 벌써 7년이 지났네. 요즘엔 내가 자주 못왔지? 미안해. 엄마는 거기서 내 걱정하지 말고 건강하게 잘 크는 것만 지켜봐줘. 우리 함께 할 순 없지만 늘 보고싶을 거야. 사랑해”

지난 7일 국내 최초 국립 수목장림인 ‘국립하늘숲추모원’의 개원 10주년 기념행사가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양동중 체육관에서 개최됐다. 국내 장례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수목장림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는 ‘추억이 머무는 숲, 사람을 품다’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추모객과 각 기관 관계자, 지역민 등 240여 명이 참석한 올해 행사는 추도묵념, 경과보고 및 유공자 시상, 각종 퍼포먼스 등 하늘숲추모원의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기념식은 단순한 축하 행사로만 그치지 않았다. 행사장 한켠에 장례문화 인식 개선 공모 수상작 및 추모가족 이용수기를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하고, 유가족들을 위한 산림치유 프로그램도 진행하는 등 수목장에 대한 인식 개선 코너도 운영됐기 때문이다.

추모객들이 국립하늘숲추모원의 추모목 앞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무엇보다 행사엔 하늘숲추모원 인근 주민, 제2국립수목장인 ‘기억의 숲’ 대상지 주민들도 함께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단순한 장례시설에 불과했던 수목장림이 주민들도 함께 운영에 참여하는 상생의 공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박종호 산림청 차장은 “국립하늘숲추모원은 수목장림의 가장 모범적인 모델로 자리매김했다”며 “고인을 아름답게 기리는데 수목장 만한 장법이 있을까 싶다. 사계절에 따라 순환하는 숲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또 다른 생명이 시작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기엔 반대, 지금은 자연장 ‘대세’

수목장은 국내 자연장의 대표주자이지만 지금의 위상을 갖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해야만 했다. 수목장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오해때문에 많은 이들이 꺼려했기 때문이다.

도입 초기 수목장에 대한 거부현상은 비단 국내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1990년대 세계 최초로 수목장을 도입한 ‘수목장 선진국’ 스위스도 초기에 주민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수목장이 산림훼손을 방지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제도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스위스 국민들의 인식 역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관리가 편하고 비용이 들지 않아 후손들의 부담이 적고,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선택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장점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이들이 이용하게 됐다. 지금은 이용객의 50% 이상이 생전에 추모목을 구입할 정도다.

국내에서 자연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계기도 스위스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역시 묘지로 인한 국토훼손 문제가 대두되며 자연장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던 것이다.

수목장 도입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산림청은 지금의 자리를 ‘모델 수목장림’ 대상지로 확정하고, 3년여의 조성기간을 거쳐 2009년 5월20일 하늘숲추모원을 개원했다. 추모원 조성이 완료된 이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09년 4월 사전예약을 시작한 하늘숲추모원은 예상보다 빠른 2012년 가족목 분양이 완료됐고, 이듬해에는 기존 10만㎡에서 55만㎡로 면적이 확대됐다.

추모목 분양률과 이용객 역시 큰 폭으로 늘었다. 추모목 분양률은 지난 6월 기준 전체 6315본의 84%(5288본)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4만1100여 명이었던 이용자의 수 역시 지난해 8만5400여 명으로 2년 만에 두 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개장 이후 지금까지의 누적 방문객 수도 약 40만 명에 달한다.

주민 참여로 ‘혐오시설’ 이미지 탈피

엄숙한 추모 공간이던 하늘숲추모원에 작은 변화가 생긴 것은 2016년의 일이다. 그해 8월 추모원 내에 야영장을 조성하고 주민들과 함께 운영을 시작하며 수목장림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특히 야영장 개장 이듬해인 2017년부터 열린 ‘캠핑 페스티벌은’ 수목장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수목장림이 조성된 숲에서 체험활동·캠핑과 다양한 문화공연까지 즐길 수 있게 되며 혐오시설이 아닌 휴양의 공간으로 인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국립하늘숲추모원 안내센터·관리동 모습. 산림청 제공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이 함께 운영에 참여하게 된 점은 지역 상생의 모범적인 모델로 꼽힌다. 수목장림은 혐오시설로 불렸던 과거와 달리 이제 지역의 소득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처럼 하늘숲추모원이 높은 인기를 끌자 국립수목장림을 추가로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더욱이 하늘숲추모원이 2차례에 걸쳐 면적을 확대했음에도 2021년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추가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때문에 산림청도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중부권 국립수목장림 조성을 추진했지만,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며 사업이 계속해서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했던 만큼 산림청은 수목장림 대상지 선정 과정부터 조성·운영 단계까지 지자체 및 지역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제2의 국립수목장림인 ‘기억의 숲’ 조성 대상지를 공모, 충남 보령시를 최종 대상지로 선정했다. 국내 수목장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김재현 산림청장은 “10여 년 전 수목장을 도입해 수목장림을 조성할 당시만 해도 전통적인 매장문화가 우리나라의 주된 장례방식이었다”며 “하지만 자연친화형 장례방식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다 보니 수목장림을 조성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청장은 이어 “산림청은 그동안 수목장림의 취지에 맞도록 산림환경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고인의 추모목을 정성스럽게 관리했다. 덕분에 유가족들은 하늘숲추모원에서 자연이 주는 따뜻한 위로를 체험할 수 있게 됐다”며 “수목장림이야말로 현생을 열심히 살다간 고인을 자연으로 자유롭게 보내드리는 길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