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혁상] 개혁 정당성과 ‘깨끗한 손’

입력 2019-09-26 04:01

영미권에 ‘법은 불법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주로 미국에서 특허권 침해 관련 소송이 붙었을 때 부적절행위를 한 기업 또는 개인의 책임 소재를 가릴 때 이를 반영 또는 판단하는 개념이다. ‘클린 핸드 원칙(clean hands doctrine)’이다. 한마디로 피해 구제 요청을 하려면 청원인도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과거 이런 제도가 시험 도입된 적이 있었다. 10여년 전 대전지검은 피해자의 책임이 큰 사기, 횡령 등 재산 관련 고소사건에 공권력 개입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상식적인 경제 질서를 벗어나 투기적 이익을 얻으려다 입은 피해, 상대방이 불법행위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거래하다 입은 피해에 대해선 피해자도 그 책임에서 100% 자유로울 수 없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불법행위인 줄 알면서도 거래해서 피해를 봤을 경우 국가가 적극 개입하면 자칫 불법행위에 동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지 보름 남짓 지났다. 장관으로서의 행보는 그야말로 속도전이다. 지난 9일 취임과 동시에 “적절한 검찰 인사권 행사”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검찰개혁 완수”를 선언한 그는 다음 날인 10일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개혁법안의 국회 입법활동 지원, 검찰개혁 조직 구성을 지시했다.

11일엔 특별수사를 비롯한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 형사부 및 공판부 강화를 내걸었다. 추석 연휴 기간엔 고 김홍영 전 검사 묘소를 방문했다. 상명하복식 검찰의 조직문화를 개혁하겠다는 메시지다. 17일엔 장관 직속기구인 검찰개혁추진지원단을 출범시켰고, 18일엔 여당과 사법 및 법무개혁방안을 협의했다. 집단소송제도 확대 개선,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도입 등이 거론됐다.

이들 정책이나 방향, 과제는 사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갓 취임한 장관이 추진하기에 엄두도 내기 어려운 것들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인권 보호 측면에서 기념비적인 진전으로 비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런 개혁의 주체가 오로지 조 장관 한 명이어야 하느냐는 물음엔 동의하지 않는다. 조 장관과 가족 관련 여러 의혹과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제 정점으로 향하고 있다.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조 장관이 후보자 시절부터 해왔던 수많은 해명 중 상당수는 이미 거짓말로 드러났다. 5촌 조카는 구속됐고, 배우자는 재판에 넘겨졌으며 다른 혐의도 받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조 장관 본인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태도 그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대외 행보가 얼마나 진정성을 얻을 수 있을지, 또 그가 추진하는 개혁의 당위성이 얼마나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조 장관이 취임 벽두부터 밀어붙이는 개혁방안들이 의견 수렴을 거치고 현안을 완전히 파악한 후에 내놓는 것들인지, 쫓기듯 조급하게 발표할 수밖에 없는 것들인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청을 방문해 검사들 목소리를 듣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수사를 받는 장관이 검사들을 모아놓고 검찰 개혁을 강조하는 것은 타이밍, 명분도 적절치 않다.

검찰 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시대적 과제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오랜 기간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러온 검찰 권력의 폐해는 이미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검찰 개혁 과제를 조 장관이 반드시 총대를 멜 필요는 없다. 그는 스스로 짐을 짊어지겠다고 했다. 수사를 받는 장관이 검찰을 개혁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적임자는 조 장관 외에도 있다. 개혁은 특정인 한 명이 짊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이 받쳐주고 개혁에 대한 정당성과 당위성이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 그런 정당성과 당위성은 ‘깨끗한 손’에서 나온다.

남혁상 사회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