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호리는 산과 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주민 대부분은 농사를 지었다. 마을 중심에는 화호교회가 있었다. 아버지가 설교하던 교회는 내게도 특별했다. 교회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나를 하나님의 종으로 바치겠다고 서원기도를 한 걸 안 뒤로는 더욱 각별했다.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는지 교회에 가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교회학교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설교를 듣고 나면 구연동화 시간이 이어졌다. 선생님이 동화 이야기를 시작하면 정신을 놓고 들었다.
성경공부가 시작되기 전 선생님은 출석을 부르셨다. 대답 대신 성경구절을 외워야 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고 하는 식이다.
학사관리도 철저했다. 헌금 액수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전도도 해야 했다. 성경구절 암송과 헌금, 전도가 필수 과제였다. 성탄절이 되면 시상을 했다. 큰 상을 받겠다고 모두 열심히 외웠고 성실하게 헌금했으며 전도했다.
어머니는 주일 저녁마다 다음 주일 헌금 10환을 주셨다. 지폐는 다리미로 정성스럽게 다리셨다. 빳빳하게 펴진 돈을 두 손으로 받아 성경 사이에 넣었다.
이토록 소중한 헌금 때문에 사달이 났던 적이 있다. 동네 입구에 구멍가게가 있었다. 식료품도 팔고 군것질거리도 팔던 작은 가게였다. 물건들에는 항상 뿌연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토요일이었다. 친구가 느닷없이 사탕을 사 먹자고 했다. “종순아, 너 헌금 있잖아. 그걸로 사 먹자. 남은 돈 헌금하면 되잖아.”
솔깃한 제안이었다. 나도 좋고 하나님도 좋은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성경 안에 넣어뒀던 돈을 꺼내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심장이 뛰었고 손은 떨렸다. 하지만 사탕 먹을 생각에 한없이 설렜다.
10환을 내자 주인은 사탕 한 개와 5환을 거슬러줬다. 누가 볼까 서둘러 입에 넣었다. 달콤했다. 오물거리며 빨아 먹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지에 싸 다락에 감췄다.
주일 아침, 사탕 먹을 새도 없이 교회로 달려갔다. 헌금을 냈더니 선생님이 “맨날 10환 하더니 오늘은 5환이구나”라고 했다. ‘어머니에게 확인할 것이다’라는 경고라는 걸 알 리 없었다.
한참 놀다 집에 왔더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리 오거라.” 어머니가 건조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단단한 버들가지 두 개가 어머니 앞에 있었다. 하필 방 청소하던 어머니가 신문지에 싸둔 사탕을 발견하신 것이었다. 선생님도 어머니를 만난 뒤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주의 종이 되라는데 헌금에 손을 대다니. 종아리 대라.” 부끄러웠다. 맞기 시작하니 너무 아팠다. 셀 수 없이 맞았다. 밥도 안 주셨다. 퉁퉁 부은 종아리를 만지다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 자는데 숨쉬기가 답답한 걸 느꼈다. 눈을 떴다.
어머니가 나를 안고 기도하고 계셨다. “주님, 종순이의 죄를 대신 회개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종순이가 다시는 주님의 것에 손대지 않게 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짐했다. “주의 종이 될 사람이니 정직해야겠다. 거짓말하지 말자. 주님은 모두 보고 계신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