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되는 저금리 기조에 불안한 건 예금자뿐만이 아니다. 예금자의 돈을 굴리는 시중은행들도 대출금리 하락으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의 도시지역 상업은행들은 이자이익 의존도가 높아 ‘저금리 직격탄’을 맞았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유로존 은행들도 유럽중앙은행(ECB)에 돈을 맡길 때마다 불어나는 ‘보관료’ 부담을 떠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은행권이 높은 실적에도 금리 하락 시기에 주가 부양이 힘들다고 지적한다.
하나금융연구소가 지난 23일 발표한 ‘중국 도시 상업은행의 부실 위험 증가’ 보고서에 따르면 금리가 떨어질수록 중국 도시지역 상업은행들의 실적은 부진했다. 대출금리가 떨어지자 이자이익도 덩달아 감소해서다. 연구진은 “이자이익 의존도가 높은 은행일수록 수익성 둔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도시 상업은행의 미래는 더 암울하다. 중국 인민은행이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낮춰 사실상 대출금리 인하를 유도하고 있어서다. 은행 입장에선 대출마진 축소를 피할 길이 없어지는 셈이다. 특히 특정 도시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기업대출 영업을 주로 하는 탓에 지방경기 침체에 따른 부실채권도 늘었다. 도시 상업은행들의 부실채권은 올 상반기에 1년 전보다 40% 증가했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5년째 마이너스 금리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유로존 은행들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ECB는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돈을 일정 수준을 초과해 맡기면 보관료를 물린다. 시장에 돈을 더 풀라는 신호다. 하지만 경기 불확실성이 커져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이자를 받지 못하는데도 저축만 한다. 투자할 곳이 없는 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보관료를 내면서까지 손실을 감수하는 이유다.
관건은 ECB에 내는 ‘천문학적 보관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은행협회 주장을 인용해 “유로존 은행들이 매년 ECB에 내는 예치금 수수료만 75억 유로(약 92조85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 때문에 올해 상반기 유로존 은행권의 전체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6%로 평균자본비용 11%를 밑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ROE는 들인 자본금 대비 얼마나 많은 이익을 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독일 일간지 빌트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를 은행과 예금자의 피를 빨아먹는 ‘드라큘라’에 비유하기도 했다. 빌트는 “예금하기 위해 찾아온 고객에게 오히려 보관료를 물리게 하는 이상한 구조를 만들었다”며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은 어떨까. 분기마다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지만, 국내 은행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주가 부진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금융지주 회장들이 자사주를 매입하고 해외 투자설명회(IR)에서 진땀을 빼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보면 4대 금융지주(KB·신한·우리·하나)는 올해 2분기 기준으로 0.50배에 불과했다. 기껏해야 자산 가치의 50% 수준에서 대접을 받는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돈맥경화’가 심해지는 금리 인하 시기에 대출이 주력인 은행주의 투자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25일 “기준금리 인하는 이미 가계나 기업의 투자 여력이 줄어 은행으로부터 대출해 가는 규모가 감소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곧 경기가 하락 국면에 있다는 증거”라며 “대출을 해주면서 이자 이익을 남겨야 하는 은행이 제대로 영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를 투자자에게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