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작은 행성, 명왕성… 그 파란만장한 역사

입력 2019-09-28 04:06

신해경, 루시드폴, 참깨와 솜사탕, 좋아서 하는 밴드…. 이들 뮤지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이들이 각각 ‘명왕성’이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저마다 다른 색깔을 띤 음악이었지만, 이들 뮤지션이 발표한 노래엔 하나같이 가닿을 수 없는 존재가 돼버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진하게 녹아 있다. 가령 신해경의 ‘명왕성’ 후렴구에는 이런 노랫말이 등장한다. “나를 떠난 그대가 보여/ 내가 보낸 그대가 보여….”

명왕성이 이렇듯 이별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건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이 내린 결정 탓이다. IAU는 그해 8월 24일 투표를 통해 명왕성의 행성 자격을 박탈했다. 이유는 명왕성의 존재감이 여타 태양계 행성에 비해 보잘것없다는 것. IAU의 발표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는 사랑이 끝나고서야 사랑을 실감했다는 듯 한바탕 야단법석이 벌어졌다. 세계의 ‘명왕성 마니아’들은 명왕성을 이대로 떠나보내선 안 된다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명왕성 연대기’에는 인류가 명왕성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과 이 별의 흥망성쇠, 그리고 명왕성의 등장이 바꿔놓은 천문학의 세계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명왕성은 영어로 망자들의 신을 일컫는 ‘플루토(Pluto)’라고 불리는데, 책을 읽으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시작으로 인류 역사에서 명왕성이 차지한 독특한 위치들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무엇보다 이 책이 눈길을 끄는 건 저자의 명성이 대단해서다. 닐 디그래스 타이슨(사진)은 칼 세이건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는 스타 과학자다. 무엇보다 그는 ‘명왕성 퇴출 논쟁’이 벌어질 때 그 중심에 있었다. 논쟁은 2001년 미국 뉴욕의 한 천체 투영관 태양계 행성 전시물에 명왕성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는데, 당시 저자는 이 천체 투영관의 관장이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복기하면서 “무거운 심정으로 명왕성의 강등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적어두었다.

명왕성을 둘러싼 갖가지 문화사적 사건들을 일별할 수 있는 이색적인 과학 교양서다. 이 책의 부제처럼 ‘명왕성 연대기’를 마주하는 독자들은 ‘우리가 사랑한 작은 행성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