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400년 시간적 공백이 있습니다. 그사이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0년 침묵을 깨고 선지자를 통해 다시 말씀했습니다. 그 선지자는 세례 요한입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 중 예수님과 가장 연관이 깊은 인물을 고르라고 한다면 세례 요한을 떠올릴 겁니다. 그는 예수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요한은 출생부터 예수님과 연관됐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예수님보다 먼저 선포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요한은 헤롯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가 감옥에 갇혔고, 결국 헤로디아의 음모에 의해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 당신이 메시아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며 주님과 나와의 관계성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내 삶이 예수님과 교회를 나타내는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유대인의 대표자는 요한에게 “당신은 누구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요한의 영적인 정체성에 대해 질문한 것입니다. 이 질문의 핵심은 당신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냐는 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 바로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단호히 끊어서 대답합니다. 선지자냐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요한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다시 묻습니다.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질문을 슬슬 피하지 말고 똑 부러지게 대답하라는 요구입니다. 요한은 이사야 40장 3절을 인용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 1:23)
사람들은 요한의 주위로 몰려들며 기대를 하고 “당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다고 약속하신 말씀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요한은 “나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증거하는 소리일 뿐”이라고 답합니다. 말씀은 내용이며 소리는 그 내용을 전달하는 매체입니다. 말씀이 목적이라면 소리는 수단입니다. 자신은 하나님 아들인 예수님을 전하고는 사라지는 소리라고 설명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인정받고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기독교 안에 이단이 많이 생기는 이유는 자신이 소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말씀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 소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스스로 소리됨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리의 역할로 부름을 받았는데 말씀의 역할을 하며 주목을 받으려 하니 문제가 됩니다.
요한은 당시 인기가 참 많은 이였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이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루살렘에서 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질문에 주저함 없이 자신의 본질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는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을 소개하는 사람일 뿐인데 그분의 신발 끈조차도 맬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평가 속에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사람들의 한두 마디에 쉽게 상처받습니다. 저 역시도 이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나를 높일 수 있는 상황으로 몰고 갈 때 이를 단호히 끊을 자신이 없습니다.
세상은 ‘너는 누구냐’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면 내용보다 소리인 나를 자꾸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이라는 진짜를 못 보여주고 가짜인 나만 보여주다가 끝나버리기 일쑤입니다. 나만을 보일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세상을 향해 외칩니다. 가짜인 나만 보고, 내게 실망해서 진짜이신 주님을 놓치지 말아 달라고 말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이 말씀이신 주님, 구원이신 주님, 소망이신 주님을 꼭 한 번 만나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김근수 구세군이리교회 사관
◇1938년 9월 18일 전북 익산에 세워진 구세군이리교회는 지역사회를 돕고 섬기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는 신앙을 꿈꾸고 있습니다. 세상으로 보냄 받은 교회로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열망으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워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