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베르테르 효과 때문”… 전문가들 “경제적 어려움·정신질환 관리 소홀 탓”

입력 2019-09-25 04:01

지난해 자살사망자 급증에 대한 정부의 설명은 ‘베르테르 효과’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의 자살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베르테르 효과만으로는 자살사망자 급증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전문가들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점과 함께 정신질환자 관리가 소홀해진 점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24일 자살사망자 급증 통계가 나오자 지난주 배포한 보도계획에 없던 설명회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었다. 복지부는 “2017년 12월부터 가수, 배우, 정치인 등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이로 인한 모방 효과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중앙자살예방센터의 2013년 분석 결과를 인용해 유명인의 자살 후 2개월간 자살자 수가 평균 606.5명 증가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정부는 실업률이나 경제 상황의 악화는 자살 증가의 직접적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한 사람의 자살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고립과 우울증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다. 모방 효과가 있었다는 건 유명인의 자살이 최후의 선택에 영향을 줬을 거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자 입원 요건을 까다롭게 한 정신건강법 개정이 자살 급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그는 “자살사망자의 80% 이상이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며 “이들의 입원이 어려워지면서 관리가 소홀해진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권 교수는 “경제 여건 악화가 우울증으로 이어지므로 경제적 사유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 방법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점을 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는 “최근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병원에 오는 자살시도자가 늘었다”며 “농약 판매를 관리해 자살률을 낮췄던 경험을 살려 자살 수단으로 사용되는 물품의 판매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는 지난해 자살사망자 수가 증가한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민관협의체를 통해 실천 가능한 협력 방안을 마련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자살로 내몰리지 않도록 복지 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