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된 서원… 선비의 숨결 느껴보세요

입력 2019-09-25 18:06
한국관광공사는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린 한국의 서원 9곳을 소개했다. 사진은 경남 함양 남계서원 전경. 한국관광공사 제공

한국관광공사는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린 한국의 서원 9곳을 ‘추천 가볼만한 곳’ 특집으로 추천했다. 이 가운데 최근 5년간 본보 여행면에 소개되지 않은 5곳을 소개한다. 나머지 4곳은 전남 장성군 필암서원,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 경북 안동시 병산서원,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이다.

‘실천 유학’ 정여창의 숨결… 함양 남계서원

덕유산과 지리산 줄기를 품은 경남 함양은 산천이 아름다운 고장으로 손꼽힌다. 더불어 선비의 고장으로도 통한다. 예부터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하는데, 안동에 퇴계 이황이 있다면 함양에는 일두 정여창이 있다. 정여창을 기리는 함양 남계서원(사적 499호)은 영주 소수서원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이며, 조선시대 서원 건축의 본보기를 제시한 곳으로 평가 받는다. 동방5현으로 불리는 정여창의 숨결이 서려 있는 남계서원은 유생이 휴식을 취하던 풍영루와 사당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고, 기숙사인 양정재와 보인재 앞에 있는 연지가 이색적이다. 정여창의 고향이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 잘 알려진 개평한옥문화체험휴양마을에는 함양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재 186호)을 비롯해 100년 넘은 전통 한옥 60여 채가 남아 있다.

경북 경주 옥산서원 구인당 대청. 한국관광공사 제공

태고의 자연 속 학문과 사색… 경주 옥산서원

조선시대 유교 교육기관이자 명문 사립학교인 경주 옥산서원(사적 154호)은 풍광 좋은 안강의 자계천에서 숲과 계곡이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있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는 곳이다. 희재는 엄격한 강학과 성현의 문화가 만나는 이곳에서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았다. 역락문을 지나 무변루, 구인당, 민구재와 암수재까지 작은 문고리 하나 무심히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회재의 학문적 열정이 스며들었다. 서원 앞 계곡에는 책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 넓고 평평한 너럭바위가 절경이다. 회재가 이름을 붙인 5개 바위 가운데 세심대(洗心臺)에는 퇴계 이황이 새긴 글씨가 남아 있다.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라’는 뜻에서 그가 이 천혜의 자연을 얼마나 아꼈을지 짐작할 만하다.

회재가 살았던 경주 독락당(보물 413호)은 건축학적으로 높이 평가 받는다. 자연과 하나 된 공간 배치와 구조가 멋스러워 잠시 머물러도 힐링이 된다. 회재가 태어난 서백당이 있는 경주 양동마을(국가민속문화재 189호)의 명품 고택들을 돌아보는 시간도 황홀하다.

대구 달성 도동서원 중정당으로 들어가는 환주문. 한국관광공사 제공

조각보 같은 기단·계단의 꽃송이… 달성 도동서원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며 극찬했다. 동방5현 중 가장 웃어른인 한훤당 김굉필을 기리는 서원 이름이 ‘도동’이 된 이유다.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자리엔 우리나라 5대 서원 가운데 하나인 달성 도동서원(사적 488호)이 있다. 서원 앞을 지키고 선 은행나무가 400여 년 세월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서원이 딱딱하고 권위적일 거라는 생각은 오해다. 수문장인 은행나무를 지나 수월루로 들어서면 소소하면서도 섬세한 공간이 마법처럼 펼쳐진다. 도포 자락 여미고 겨우 오를 수 있는 계단과, 고개를 숙여야 들어설 수 있는 문이 소박하고 사랑스럽다. 동입서출의 규칙에도 귀여운 다람쥐가 등장한다. 12각 돌을 조각보처럼 이은 기단 앞에 서면 심장이 멎는다. 지루한 강학 공간에 보물처럼 숨겨진 장치를 하나하나 짚다 보면, 어느새 선조의 깊은 마음이 보인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한훤당고택은 예쁜 한옥 카페로 이름났다. 품격 높은 고가에서 즐기는 전통차와 유기농 커피가 특별하다.

전북 정읍 무성서원의 강학 공간인 강당. 한국관광공사 제공

최치원 품은 전북 정읍 무성서원

무성서원(사적 166호)은 신라 말 학자인 고운 최치원의 선정을 기리는 곳으로, 생사당(生祠堂) 태산사가 뿌리다. 이후 태산서원으로 불리다가, 1696년 사액을 받으며 ‘무성’이란 이름을 얻었다. 마을에 터를 잡아 소박해 보이지만,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화를 면한 내공 있는 서원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외삼문 역할을 하는 현가루와 강학 공간인 강당, 기숙사인 강수재, 사우 태산사 등이다. 서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태산사에는 최치원과 정극인 등 7인을 모셨다.

무성서원을 품은 원촌마을엔 우리나라 최초 가사 작품 ‘상춘곡’을 남긴 불우헌 정극인의 묘가 있다. 최치원이 거닐었다는 정읍 피향정(보물 289호)도 놓치면 아쉽다.

충남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 한국관광공사 제공

화·미·예를 다시 보는 논산 돈암서원

돈암서원(사적 383호)은 사계 김장생 사후 3년 되던 1634년(인조 12) 그의 후학들이 창건했다.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학풍을 이어받은 기호학파로, 무엇보다 예를 중시했다. 돈암서원은 본래 지금의 자리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881년(고종 18) 홍수 피해를 우려해 옮겼다. 서원이 이전하면서 여느 서원과 다른 건축 배치를 보이지만, 서원의 진정성은 동일하다. 예를 중시하던 김장생과 후대의 교육 정신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진다. 창건 당시 강당인 응도당(보물 1569호), 도담서원의 역사가 쓰인 원정비와 내삼문의 꽃담 등 꼭 봐야 할 곳들이 많다.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