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이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전파·감염경로에서 유력한 매개체로 ‘차량’이 지목됐다. 최초 확진 사례가 나온 경기도 파주시 농장(①번 농장)과 나머지 발병 농장 3곳 간에 축산차량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축산 차량이 곳곳에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를 퍼트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기에다 혈청 검사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기 김포시 통진읍 농장(③번 농장)은 예방 차원에서 이뤄진 정밀 검사에서 감염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받았는데 며칠 만에 확진이 됐다. 방역 당국이 농장별로 실시하고 있는 혈청 검사 결과만 놓고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2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③번 농장과 ④번 농장(파주시 적성면)은 ①번 농장과 역학관계를 맺고 있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축산차량이 ①번 농장과 ③번, ④번 농장을 오갔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축산 차량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돼지 사료를 배달하는 차량, 분뇨를 처리하는 차량, 도축장으로 돼지를 실어나르는 차량 가운데 동선이 겹치는 사례가 있다는 정도만 확인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차량에 묻어 이곳저곳으로 옮겨 갔을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농식품부는 ②번 농장(연천군 백학면)도 ①번 농장으로부터 차량을 통해 감염됐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다. 두 농장 사이에 직접적 차량 이동은 없지만, ①번과 ②번 농장을 드나들던 차량들이 같은 차고지를 쓴다. 차고지에서 다른 차량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농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차량이 주차장 등에 들어가면 이 시설을 이용하는 차량 모두가 2차 역학관계에 놓인다”며 “①번 농장과 ②번 농장은 이렇게 연결된 거 같다”고 설명했다.
차량이 역학고리로 부상함에 따라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의 추가 전파 또는 확산 가능성은 높아진다. 중점관리지역인 경기 북부지역을 넘어 남부지방으로 번질 수 있다. 일례로 ③번 농장을 드나들었던 사료 차량은 지난 19일 충북 음성군, 21일 충북 진천군을 방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지역에서 아직 감염을 의심할 만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바이러스 잠복기(4~19일)를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다.
또한 감염 여부를 파악하는 유일한 수단인 정밀검사의 신뢰도도 불안하다. ③번 농장은 최초 발병 이후 선정한 324개 역학관계 농장에 포함된 곳이다. 예방 차원에서 지난 20일 혈청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 나왔다. 사흘 뒤인 23일 어미돼지 4마리가 유산 증상을 보이고 1마리가 폐사해 재검사를 했고 확진(양성)으로 판명됐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샘플링의 한계다. 농식품부는 방역대(발병 농장으로부터 반경 10㎞ 이내) 안에 있는 농장은 16마리, 역학관계에 있는 농장은 8마리를 뽑아 혈청 검사를 하고 있다. ③번 농장의 규모(1800마리 사육)를 감안하면 0.4%만 검사하고 ‘안전’ 딱지를 붙인 셈이다.
농식품부는 감염 초기에 혈청 검사가 소용없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 경우 문제는 심각하다. 검사 시점이 방역망을 펼친 이후라는 걸 감안하면, 방역망이 뚫렸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