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 휩쓴 중국 돼지고기 파동… 전세계 육류시장 대혼란

입력 2019-09-25 04:08
한 여성이 24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판매대에 진열된 돼지고기를 고르고 있다. 인천시 강화군의 한 양돈농장에서 이날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다섯 번째 확진 판정이 나오면서 돼지고기 가격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여파로 중국에서 돼지고기 파동이 일어나면서 전 세계 육류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중국이 돼지고기 수입을 크게 늘리자 돼지고기뿐 아니라 대체 육류인 소고기와 닭고기, 양고기까지 연쇄적으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약 1억5000만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되면서 돼지고기 공급이 부족해져 전 세계에서 육류가격이 급등하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브라질에서는 닭고기 등 가금류의 중국 수출량이 1년 전보다 31%나 급증하면서 닭가슴살과 닭다리 등의 소매가격이 16%가량 올랐다. 유럽에서는 돼지고기 소매가격이 평균 5% 올랐고, 호주 식료품점의 양고기 가격은 14% 급등했다. 뉴질랜드는 소고기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영국에선 돼지고기 가격이 2017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이 됐다. 돼지고기 파이로 유명한 베이커리 체인점 디킨슨앤모리스는 최근 돼지고기 도매가격이 26%나 오르자 돼지고기 파이 가격을 10~15% 인상했다. 디킨슨앤모리스 관계자는 “돼지고기 공급이 부족해 돼지고기 파이를 1주일에 4000개 정도밖에 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아직 돼지고기 가격 변동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선물시장에서 12월물 돈육 가격이 9월에만 4.5% 올라 곧 육류가격이 급등할 수 있음을 예고했다. 육류가공업체인 타이슨 푸드와 스미스필드 푸드, 샌더슨 팜의 경영진은 유럽과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중국에 돼지고기 수출을 늘리면서 전 세계 육류부족 현상이 빚어져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연간 약 5530만t에 달하는 돼지고기 소비량 대부분을 국내에서 자급해 왔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 여파로 돼지고기 생산량이 올해 약 1620만t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전 세계 돼지고기 거래량의 배에 가까운 규모다.

중국은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 육류 수입 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다. 5월과 7월 사이 중국의 육류 수입은 70% 가까이 증가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육류가격지수는 올해 10% 올라 2015년 초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은 최근 브라질의 육류 가공 공장 25곳을 추가로 승인해 현지 수출인증 육류 공장을 89곳으로 늘렸다. 브라질의 육류 가공업체인 BRF사는 중국 수요에 맞추기 위해 돼지고기와 닭고기 수출능력을 30% 정도 늘렸다. 파트리시오 로너 BRF 부사장은 “중국 수입업자들이 평소 돼지고기 구매량의 3배를 구매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소고기를 즐겨먹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육류 가격 급등으로 일부 주민들이 소고기를 사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올해 대 중국 소고기 수출은 배 이상 늘었고 가금류 수출은 68% 증가했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 국내 소고기 가격은 전년 대비 51% 올랐다.

스페인에서도 가공업체들이 구매 단가가 높은 중국에 돼지고기를 대거 수출하면서 내수 시장에서는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스페인 최대 돼지고기 가공업체 관계자는 “중국으로 수출하면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어 국내에선 족발 같은 값싼 부위도 시장에서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