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쿡방’에 신물 날 법한데 이 예능만큼은 다르다. 때깔 좋은 제철 반찬과 맛깔나는 출연진 호흡도 매력적이지만, 화면을 넘어 전해지는 배우 김수미(70)의 따뜻함과 푸근함이 단연 백미다. ‘는둥만둥’ ‘요만치’ ‘적당히’…. 김수미는 구수한 사투리를 조미료 대신 흩어가며 침 고이는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낸다.
이 프로그램은 ‘수미네 반찬’(tvN). 40여년 요리 경륜을 자랑하는 김수미가 매회 셰프(최현석, 여경래, 미카엘) 제자들과 함께 반찬 조리법을 전한다. 지난해 6월부터 시청률 3%(닐슨코리아) 안팎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데, 온라인엔 ‘수미표 레시피’를 전수받은 네티즌 제자들의 포스팅이 줄을 잇는다.
김수미의 힘이라고 볼 수 있다. 배우이면서 예능인으로, 엄마이면서 때론 걸걸한 욕쟁이 할머니로 활약해 온 그의 다채로운 매력이 듬뿍 묻어난다. 최근 경기도 일산 세트장에서 만난 수미네 반찬 문태주(42) PD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도 수미 선생님만의 특별함이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것 같다”고 했다.
프로그램을 향한 김수미의 애정도 남다르다. 촬영 날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방송에 쓰일 밑반찬을 준비한다. 메뉴 선정에도 꼼꼼히 신경을 쓴다. 한 달 가스비만 90만원이 나온다는 김수미는 “한식이 대단한 게 가지 하나로 수백 가지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라며 “늘 연구를 한다”고 했다. 이런 열정과 손맛은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서 왔다.
“18살에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임신하고 입덧을 하면서 엄마가 만들어주신 음식이 너무 그리웠어요. 그게 한이 돼 요리를 시작하게 된 거죠. 우물가와 대청이 있는 세트장도 어릴 적 일곱 식구가 모여 살던 시골집을 모티브로 만들었어요.”
수미네 반찬은 변두리로 밀려났던 반찬을 조명하며 요리 예능의 새 지평을 열었다. 문 PD는 “우리 식문화가 집 식탁 위에서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며 “수미네 반찬이 전하는 작은 반찬들이 가족과 문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수미를 이끈 건 건강한 한국 요리를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그는 “한국인은 밥, 김치, 된장을 먹어야 ‘밥심’이 생긴다”며 “조금만 배우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데, 그럴 기회가 없는 게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혼자 끼니를 때우는 게 익숙한 배우 김용건 임현식, 가수 전인권과 함께 ‘할배 특집’을 방송 중이다.
“김용건, 임현식씨는 40년을 같이 일한 친오누이같은 사이에요. 전인권 선생님은 다른 프로그램에서 잠깐 뵀었는데, 혼자 사신다고 해 김치하고 반찬을 바리바리 싸 보내드렸어요. 밥반찬을 선물로 받아본 건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인연이 돼 모시게 됐어요.”
김수미는 예능 ‘최고의 한방’(MBN), 뮤지컬 ‘친정엄마’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활약 중이다. 드라마 ‘99억의 여자’(KBS2)도 촬영을 앞두고 있다. 젊은이도 버거워할 힘든 일정이지만, 감사한 마음이 늘 동력이 된다고 한다.
“40살 된 우리 매니저도 쓰러진 적이 있어요. 중학교 때 혼자 서울로 올라와 살며 다져진 정신력으로 버텨요. 요즘은 조금만 언행이 불손해도 문제가 되는데, 나는 그렇게 쌍욕을 해도 좋다니깐 복이죠. 하하.”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김수미는 “드라마와 영화로도 활발히 찾아뵙고 싶다”고 전했다. 수미네 반찬을 위한 아이디어도 술술 흘러나왔다.
“반찬을 찾으러 지역을 직접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자취하는 학생들이나 아픈 사람들을 위한 양념이 안 들어간 건강식 특집도 좋고요. 그러려면 저도 건강을 열심히 챙겨야겠죠.”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