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저신뢰사회

입력 2019-09-25 04:05

생산자가 어떤 재화를 생산하는 경우, 이로 인해 생산자를 포함한 사회 전체가 부담하게 되는 비용을 사회적 비용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어떤 재화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매연 공해 소음 등이 발생한다고 치자, 그러면 이를 제거하는데 드는 비용이 사회적 비용이다. 이 비용은 제품 생산원가에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니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하는 각종 비용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영악한 개인이나 조직은 사적 이익을 취하면서 당연히 치러야 할 비용을 치르지 않고, 이를 슬쩍 사회로 전가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개인이나 조직은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용이 더 들어가도 말이다.

정치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신뢰 자본’에서 찾았다. 그는 한 국가가 번영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신뢰를 꼽았다. 신뢰 기반이 없는 나라는 사회적 비용이 증가해 결국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라의 발전이 그 사회가 고유하게 갖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법과 제도가 잘 갖춰져 있다고 해도 신뢰가 없으면 상대방이 있는 거래에서 신뢰를 담보하기 위한 각종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신뢰는 중요한 사회적 자본인 셈이다. 저신뢰사회에서는 정치·사회적 갈등이 고신뢰사회보다 많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고소·고발이 난무할 것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 또한 증가할 것이다.

조국 장관 임명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관계없이 조국 사태는 이 사회의 신뢰 자본에 상당한 타격을 가했다. 특히 그의 언행불일치, 표리부동은 신뢰 자본을 심각하게 갉아먹었다. 사회가 두 패로 갈려 아예 상대방 의견은 인정하지도 않는 불신 사회가 됐다. 비난과 조롱이 난무한다. 조국 찬반은 엉뚱하게 법무부와 검찰의 기관 갈등으로, 유력정치인 자식들의 10년 20년 전 대학입시나 출생지 시비로 확대되고, 국회의원 아들딸 전수조사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정치권은 양쪽 지지층의 서로 다른 방향의 분노를 노골적으로 자극하며 저신뢰사회를 부추겨 정파 이익을 탐하고 있다.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은 누가 감당하나.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이 정말 이렇게 저효율·고비용·저신뢰의 국가로 이끌고 가도 되는가. 이렇게 하라고 권한을 위임해준 적은 없는데 말이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