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유권자 67%… 집토끼 사수·선거인단 數싸움 올인

입력 2019-09-28 04:04

내년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통령 선거는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찬반 투표다. 최대 이슈가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트럼프 원맨쇼’에 목을 매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반(反) 트럼프’ 정서가 최대 무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승리를 위해선 뭐든지 할 기세다. 미국 사회의 뇌관인 인종문제도 서슴없이 건드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좌충우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행보에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안겨줬던 필승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백인 표심을 결집시켜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민주당의 유색 여성 초선 하원의원 4명에게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면서 인종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또 민주당의 흑인 중진 하원의원인 일라이자 커밍스도 타깃으로 삼아 그의 지역구(메릴랜드주 볼티모어)를 ‘쥐와 설치류가 들끓는 난장판’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인종차별 전략은 추악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타깃 선정에도 신중을 기했다. WP는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인종차별 공격의 첫 제물이 된 민주당 여성 초선 4인방이 민주당 대선 후보들보다 더 비호감이었다고 보도했다. 볼티모어의 흑인 인구 비율이 65.1%로, 미국 도시 중 다섯 번째로 높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지층 내의 비호감 의원과 흑인 밀집 도시를 골라 정밀 타격을 한 것이다.

미국 연방 센서스의 2018년 인구 잠정조사에서 백인 인구 비율은 60.4%에 달한다. 히스패닉(18.3%), 흑인(13.4%), 아시안(5.9%)계를 모두 합친 비율보다 월등히 높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내년 미 대선의 백인 유권자 비율을 66.7%로 추산했다. 정치공학적으로 백인 표만 모아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도 성향의 백인 유권자들이 인종차별에 염증을 느껴 트럼프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트럼프 캠프가 인종차별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백인 노동자층 결집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선거인단 수에 올인하라”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6585만3514표를 얻었다.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는 6298만4828표를 얻는데 그쳤다. 클린턴 후보는 286만8686표나 더 얻었지만 패배자가 됐다. 대통령 자리를 도둑맞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는 독특한 미국 대선 제도에 기인한 것이다. 미국 대선에선 선거인단 과반수를 차지한 후보가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 선거인단은 인구 수에 비례해 각 주마다 배분된다. 가장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주는 55명의 선거인단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알래스카주와 와이오밍주 등 인구가 적은 8개주(워싱턴DC 포함)는 각각 3명의 선거인단을 갖고 있다. 각 주마다 대선 득표를 별도로 계산해 한 표라도 이긴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 독식주의’를 따른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전체 득표 수는 졌으나 선거인단 또는 하원 선거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된 사례는 5번 나왔다. 1800년대에 3번 이 같은 경우가 있었지만 1900년대엔 없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2번이나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00년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는 민주당의 엘 고어 후보보다 54만여표가 더 적었지만 대통령이 됐고,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보다 286만표가 더 적었으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강력한 지지집단과 광범위한 안티그룹이 있다. 트럼프는 안티층은 과감히 버리고 지지층만 갈라치기하는 방법으로 선거인단 수에서 승리를 노리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가 내년 대선에서도 전체 득표 수에서 뒤지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이기는 ‘2연승’을 거둘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합 4개주를 차지하라”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남부 플로리다주와 중동부 3개주(펜실베이니아주·미시간주·위스콘신주)에서 이기면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트럼프 캠프가 가장 공들이는 곳은 플로리다주다. 플로리다주의 선거인단은 29명으로, 뉴욕주와 함께 공동 3위다. 플로리다주는 또 대선의 풍향계다. 1964년 대선 이후 플로리다주를 차지한 후보가 예외 없이 백악관 주인이 됐다.

트럼프 캠프는 대선을 앞두고 미국을 9개 권역으로 나눴는데, 플로리다주만 단독 권역으로 지정했다. 지난 6월 18일 재선 출정식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개최한 것도 플로리다주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WP는 트럼프가 플로리다주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군들에 박빙 우세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펜실베이니아주·미시간주·위스콘신주는 ‘푸른(민주당의 상징색) 벽’으로 불렸다. 이들 3개주는 민주당이 1992년부터 2012년까지 대선에서 공화당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이들 3개주를 뺏으면서 승리를 차지했다.

이들 3개주의 공통점은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에 있다는 것이다. 피츠버그(펜실베이니아주), 디트로이트(미시간주), 밀워키(위스콘신주) 등 철강·자동차 산업 호황 시기에 크게 성장했다가 침체된 도시들이 있다. 트럼프가 중국과 관세전쟁을 벌이고, 유럽연합(EU) 등과 무역마찰을 빚는 것도 러스트 벨트 지역의 표심을 의식한 조치다.

하지만 이 3개주의 표심은 예측하기 힘들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서 이들 3개주 모두 득표율 차이 1% 미만의 초박빙으로 이겼다. 미시간주의 득표율 격차는 0.23%에 불과했다. WP는 “플로리다주·펜실베이니아주·미시간주·위스콘신주를 차지하는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