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종묵] 의심을 푸는 법

입력 2019-09-25 04:03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받는 일이 생긴다. 답답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이 문제를 두고 고려 말의 문인 이곡(李穀)은 ‘의심을 푸는 법(釋疑)’이라는 글을 지어 소상하게 따진 바 있다. 이곡은 자신이 한 적이 없는 일을 가지고 남들이 의심한다면 반드시 해명하는 것이 옳지만, 성급하게 변명하려 들다가는 오히려 의심이 더 심해지므로 여유를 두고 해명하면 이치대로 오해가 풀릴 것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일화를 하나 들었다.

어떤 여종이 주인집 아이 젖먹이는 일을 하던 중 임신을 하였는데 안주인에게 발각되자 겁이 나서 애매한 말로 바깥주인을 지목하였고 이에 안주인이 더 따지지 않았다. 그때 바깥주인이 공무로 중국에 갔다가 반 년 만에 돌아와 그 말을 듣게 되었다. 평소 아름다운 여인도 가까이 하지 않은 그였기에 어이가 없었지만 더 따지지 않았다. 그 뒤에도 여종이 실토하지 않았기에 안주인의 의심이 끝내 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깥주인은 태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이 일을 두고 이곡은 여종으로 하여금 바깥주인과 관계가 없었다고 억지로 실토하게 한들 안주인의 의심은 풀리지 않을 것이므로 바깥주인이 태연하게 있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나라 때의 직불의(直不疑)라는 사람의 고사를 들었다. 그와 같은 방에 묵고 있던 동료가 착각하여 남의 황금을 자신의 것인 줄 알고 이를 들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에 도둑으로 의심을 받은 직불의는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고 자신의 돈으로 황금을 사서 보상하였다. 고향으로 내려갔던 사람이 나중에 알고 황금을 돌려주자, 황금 주인이 크게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이곡은 잘못 가져간 사람이 나와서 자신의 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질 줄 미리 알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이 나를 의심하는 것은 나의 평소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으로 분개하여 입을 놀려서 관청에 소송하고 천지신명에게 물어보아 반드시 밝히고 난 뒤에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차라리 내가 밖으로 허명(虛名)을 받기보다 안으로 실덕(實德)을 닦아서, 이것이 쌓이고 쌓여 자연히 발현되어 사람들이 모두 마음으로 인정하면, 비록 전날에는 진짜 도둑놈이었다고 하더라도 오늘에는 그 아름다움이 충분히 전날의 허물을 덮어 줄 것이다. 하물며 전날에 도둑질을 하지 않았는데 무엇이 문제겠는가?”

의심의 일차적인 원인은 평소 자신의 언행이 남들에게 믿음을 받지 못한 데 있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가 그 틈을 타서 의혹을 제기하고, 그러면 그 의심이 점점 쌓여가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다. 결국 초연한 자세로 스스로를 반성하는 자성(自省)의 마음가짐을 갖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겠다.

그럼에도 의심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요, 또 그러한 괴로운 일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 공자의 제자 증삼(曾參)조차 의심을 받았다. 그와 동명이인이 있어 살인을 저질렀는데 어떤 사람이 그 모친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모친은 처음에는 아들을 믿었기에 그럴 리가 없다면서 태연하게 베를 짰지만, 세 사람이나 차례로 와서 같은 이야기를 하자 결국 모친이 담장을 넘어서 도망쳤다는 일화가 있다.

의심은 이러한 것이므로, 의심이 든다 하더라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곡은 “한번 들으면 의심하기 쉽고, 의심하면 해명하기 어려우며, 해명할수록 더욱 법망에 걸려들기 쉬우니, 절도의 혐의가 그러하다. 그래서 법을 제정할 때는 이에 해당하는 조항을 더욱 엄격히 해서, 귀로 듣고서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정도의 사건은 죄를 묻지 말도록 금지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도둑질을 하였다는 의심만으로 죄를 물어서는 아니 된다는 이곡의 말이 오늘날 새삼스럽다. 도둑질만 그러하겠는가? 작은 꼬투리로 남을 모해하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