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북한이 미국에 요구할 안전보장 및 제재 완화 조치가 어떤 내용일지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최근 발표한 외무성 북미국장 명의 담화를 통해 ‘제도안전 불안 요인과 발전 장애물 제거’를 비핵화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바 있다.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 개발을 위한 제재 완화가 곧 재개될 북·미 비핵화 협상의 핵심 의제임을 공식화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고려할 만한 안전보장 방안으로 우선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를 꼽고 있다.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23일 “연락사무소 설치는 북한이 가장 바라는 것 가운데 하나”라며 “양국 수도에 연락사무소가 설치된다는 것은 가장 확실한 안전보장 방안”이라고 말했다. 연락사무소 설치는 상대를 향한 군사행위 가능성을 차단하고, 현재 불안정하게 작동하는 뉴욕 채널을 보완하는 의미가 있다. 북·미 간 논의가 잘 이뤄진다면 북한은 연락사무소에서 더 나아가 상호 불가침선언이 포함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논의 시작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과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전면 중단도 북한이 요구할 안전보장 방안으로 거론된다. 북한은 그동안 한·미 군사훈련을 북·미 및 남북 정상선언을 정면 위배하는 긴장 고조 행위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군사훈련을 불필요한 지출로 여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산법’과도 맞아떨어진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이겠지만 비핵화 협상 진입 국면에서 당장 이를 요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협상이 시작되면 북한이 상호 군축 차원에서 주한미군 감축을 제안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한이 요구할 제재 완화 항목은 기본적으로 민생 관련 분야일 것으로 예상된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 2월 ‘노딜’로 끝난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자처해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 제재 해제가 아닌 일부 해제”라며 “구체적으로 2016~2017년 채택된 5건의 유엔 제재 결의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이번 협상을 통해 꽉 막혀 있는 외화벌이의 숨통을 틔우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2371호가 전면 금지한 석탄과 철광석, 수산물 수출을 일부 허용해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또 제재 결의안 2397호에 의해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된 정유제품의 공급량 확대와 올해 말이 시한인 북한 노동자 송환 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를 타진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두 사업 모두 남북 협력사업이라는 명분이 있는 데다 포괄적 제재 면제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대북 제재라는 ‘큰 둑’에 구멍을 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명시적으로 제재 완화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북한은 하노이에서 제재 완화를 전면에 내세운 것을 패착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며 “자신들은 비핵화 및 안전보장 방안만 제시하고, 제재 완화는 미국이 알아서 성의를 보이라고 공을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승욱 이상헌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