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무역수지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對)중국 무역수지 적자가 줄어든 만큼 다른 국가들로부터의 무역수지 적자가 늘었다.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들여오던 중간재를 제3국을 거쳐 수입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무역분쟁 피해를 입은 미국과 중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다른 국가로 ‘기준금리 인하 도미노’가 작동한다고 진단한다.
ING그룹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보고서를 내고 “미·중 무역분쟁이 ‘승자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8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2.00~2.25%에서 1.75~2.00%로 0.25% 포인트 인하한 배경에 상품수지 적자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겉보기에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분쟁으로 많은 이득을 챙기고 있다. 미국은 올해 들어 7월까지 중국과의 교역에서 상품수지 적자 규모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나 줄였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문제는 중국과의 교역이 아니라 전체 교역량에서 드러나고 있다. ING그룹이 예측한 올해 말 기준 미국의 총 상품수지 적자 규모는 지난해 말 총 상품수지 적자 규모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만회한 무역수지 적자폭을 베트남을 중심으로 하는 제3국과의 교역에서 기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트남은 올해 1~5월 중국으로부터 전자제품 51억 달러를 수입했는데 같은 기간 대미 수출액은 18억 달러로 1년 전보다 72% 늘었다”고 보도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미국 기업들이 새로운 공급망을 찾고 있어서다. 미국 기업들은 중국으로부터 중간재를 수입할 때 발생하는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중국산 수입품을 베트남 같은 아시아 국가를 거쳐 조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인 ‘에어팟(Air Pod)’을 제조하는 중국 현지 공장은 아예 2억6000만 달러를 들여 베트남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ING그룹은 “2014년 3월 정치적 분란으로 러시아가 유럽 농산물 수입제재를 걸자, 러시아 기업들이 벨라루스같은 제3국을 거쳐 유럽 농산물을 수입했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관세가 효력을 잃고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무역분쟁으로 ‘피로감’이 누적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는 중국 대출우대금리(LPR) 인하를 촉발한다고 예측한다. 뿐만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더 촉진시킬 것이라고 본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3일 “중국의 경기 상황에 비하면 아직까지 중국은 금리 인하를 소극적으로 한 편이다. 미국과의 무역협상 결과나 다음 달로 예정된 당대회 등 정치적 이벤트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추가 인하폭을 결정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중국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았더라도 내수 침체로 LPR을 낮춰 돈을 풀었을 것”이라며 “미·중 기준금리 인하 기조는 금리 격차로 자금이탈을 우려하던 주요국 중앙은행에 기준금리 인하 명분을 제공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