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장애인 탈시설을 통한 자립생활 정책 마련해야

입력 2019-09-24 04:03
전국적인 장애인 학대 현황을 국가적 차원에서 분석한 보고서가 23일 처음으로 나온 것은 의미가 있다. 향후 범정부적으로 추진해야 할 장애인 정책의 기본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발간한 ‘2018년도 전국 장애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 건수 3658건 가운데 실제 장애인 학대로 판정된 사례는 24.3%인 889건이었다. 피해자의 절반 이상은 경제적 자립기반이 부족한 기초생활수급자(51.7%)였다. 학대유형은 신체적 학대(27.5%), 경제적 착취(24.5%) 순이었다. 가해자 유형별로는 장애인거주시설·사회복지시설 등 기관 종사자(39.3%)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 같은 사실은 다양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정부는 장애인 학대 예방과 피해자 지원 및 보호를 위해 현재 21개인 장애인 학대 신고 의무자 직군 확대, 장애인시설 종사자에 대한 인권교육 강화, 신고 의무자의 학대 행위 시 가중처벌 규정 도입 등을 정책 제언으로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그간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학대, 인권유린, 노동착취 등이 근절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장애인들을 위해 근본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장애인 탈(脫)시설화’다. 장애인을 별도 시설에 수용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때마침 국가인권위원회가 범정부·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장애인 탈시설 추진단을 구성해 정책 로드맵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권고하고 나섰다. 인권위는 거주시설 장애인들이 본인 의사에 반해 지역사회에서 분리돼 10∼20년, 심지어 사망할 때까지 살면서 다양한 삶의 기회와 선택권을 제공받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봤다. 정부 당국은 스웨덴 영국 등 선진국들이 1980년대부터 장애인 수용시설 폐쇄를 결정하고 지역사회 중심의 자립생활정책으로 전환한 것을 모델로 삼아 단계적인 추진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민간 차원에서는 장애인을 지역사회의 이웃으로 인정하는 시민의식 제고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