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기독교 사회주의는 가능한가

입력 2019-09-24 00:05

추석 연휴를 맞아 한국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대안과 방향성을 찾기 위해 교인들과 함께 북유럽교회를 탐방하고 왔다. 동유럽교회는 공산주의 때문에 망했고 서유럽교회는 진화론 사상과 자유주의 그리고 반기독교적인 흐름 때문에 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기독교 국가 안에 존재했던 북유럽교회가 왜 무너지고 말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북유럽은 바이킹의 야성과 서유럽의 기독 신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찬란한 기독교 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가 텅텅 비어 버렸다. 아니, 반기독교적인 사상과 문화 때문에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해왔던 기도와 성경학습을 다 철폐해 버렸다. 심지어는 공감 교육과 다양성 교육을 명분으로 삼아 아예 유치원에서부터 동성애 교육을 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어느 부부가 아이에게 ‘동성애가 잘못됐다’는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선교사가 노방전도를 했다고 고발을 당해 체포됐다. 주영찬 스웨덴 스톡홀름 한인교회 목사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북유럽의 교회들이 공식적으로 영혼구원과 세계선교를 포기하고 사회 문제나 인권문제로 방향을 돌렸기 때문이다. 196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대회가 열렸다. 북유럽 국가들이 주도한 이 대회에서 전도와 선교를 포기하고 기독교가 앞으로는 정치 사회 인권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한마디로 기독교 사회주의를 표방한 것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들의 주장과 네오마르크시즘 사상이 들어오면서 동성애까지 수용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혐오·차별이나 성차별 금지법 등을 만들어서 교회로 하여금 진리를 진리로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둘째,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독일의 경건주의 학자였던 스패너는 “국가가 교회를 통제하는 순간 교회는 멸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북유럽 국가들이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진다’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교회의 역할과 영향력이 축소됐다. 처음엔 기독교 사회주의로 시작한다고 했지만 결국 무신론적 사회주의로 전락한 것이다. 국가가 종교를 통제하고 종교가 제 역할을 못 하면 그 사회주의 속에는 권력의 독재화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북유럽 국가들이 동성애 옹호법을 통과시키려 할 때 루터교의 대주교와 지도자들은 아무런 반대도 하지 못하고 지지해 버린 것이다.

셋째, 교회가 국가의 ‘종교 서비스 기관’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북유럽 교회는 말씀과 기도는 사라진 채 요가 수업을 해서 돈을 받고 관광객들에게 관람료를 받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의 정책인 마약중독자 치유, 자살 예방, 심리 상담, 난민 도우미 등 서비스 제공자 역할만 하고 있었다. 교회가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니까 종교 서비스 기관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영적인 면에서 북유럽이 폐허와 불모, 황무지의 나라가 돼버린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의 하늘은 푸르고 맑기만 한데 사람들은 꿈을 잃고 검은 상복을 입은 채 슬픈 얼굴로 낯선 거리를 배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리에 서서 그 옛날 바이킹의 야성이 기독교 영성의 꽃을 피우던 찬란한 역사를 회고하며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봤다. 신임 법무부 장관도 우리나라에 사회주의가 필요하다고 했고 심지어 기독교 내부에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적 섬김과 사랑의 사회주의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주의는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반드시 네오마르크시스트들이 추구하는 사회주의로 전락할 것이다.

사회주의는 반드시 독재 권력을 탄생시킨다. 공유 개념, 퍼블릭 마인드, 플랫폼 정신은 한국교회가 주도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의 정신이 없는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도 더 늦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 영성의 불꽃이 꺼지기 전에, 네오마르크시스트들이 표방하는 무신론적 사회주의가 이뤄지기 전에 우리 모두 함께 손을 잡고 영전, 사상전, 문화전을 해야 한다.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