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보다 강했던 ‘조성진 임팩트’

입력 2019-09-23 22:19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2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와 피아노 협연을 처음으로 겸하는 무대를 선보였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일주일 동안 가득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내한공연이 22일 막을 내렸다. 지난 16일 연천DMZ국제음악제 리사이틀을 시작으로 19~22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펼쳐진 ‘조성진과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번 내한 기간에 총 7번의 무대를 가졌다. 실내악부터 지휘까지 내용 또한 다채롭고 풍부했지만,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 젊은 연주자가 그 짧은 기간에도 계속해서 부단하게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화제를 모았던 지휘는 (본인은 당분간 지휘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일회성 이벤트로는 아쉬울 만큼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22일 공연에서 선보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이미 발표된 그의 음반과 전혀 다른 해석을 보여주었다. 오케스트라 파트를 지휘하며 조성진은 모차르트에서는 다이내믹과 루바토를 강조하며 고전주의 작품에 숨어 있는 낭만주의의 씨앗을 발굴한 반면, 쇼팽에서는 화성과 선율의 품위를 살리며 거꾸로 고전주의의 뿌리를 드러냈다. 그의 피아노가 이러한 오케스트라 해석과 통일성을 보여준 것은 물론이다. 지휘 또한 이틀 전 통영 초·중·고생을 위한 무료 공연 ‘스쿨 콘서트’에서보다 훨씬 향상되었다. 정확했지만 다소 어설프고 소극적이었던 손짓과 동작들이 이틀 만에 절도 있고 대담해져서 악단을 사로잡았다.

이런 진보는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한 듀오 리사이틀에서도 엿보였다. 경주(15일), 서울(18일), 통영(20일)에서 동일한 슈베르트 가곡들로 진행된 연주회는 갈수록 예술성과 완성도가 올라갔다. 박력 있고 투박한 악센트를 한결 부드럽게 다듬고 서정적인 미성을 과시한 괴르네의 목소리는 조성진의 생기 넘치면서도 부드러운 터치와 더할 나위 없는 조화를 이루었다.

19일 벨체아 4중주단과 협연한 브람스 피아노 5중주는 일정상 부족했던 리허설 시간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한 앙상블을 보여줬는데, 4악장에서 현악과 피아노가 서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치열하게 주고받은 대위법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이번 내한 공연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그만의 리사이틀(21일)이었다. 모차르트, 슈베르트, 베르크, 리스트 등 고전주의에서부터 초기 현대음악에 이르는 방대한 사조의 이 음악들을 그는 유기적으로 엮어냈다. 슈베르트 환상곡에서는 곡 안에 숨어있는 고전주의 형식미를 선명하게 드러냈으며, 난해한 기교의 리스트 소나타에서는 기교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의 탄탄한 내러티브를 완성시키며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과시했다.

조성진이 22일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은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 스레텐 크르스티치와 교감하는 모습.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티켓 오픈 49초 만에 매진됐던 통영 마지막 공연의 열기는 갑자기 찾아온 태풍 ‘타파’도 식히지 못했다. 취소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티켓 구함’ 표지판을 들고 로비에 서 있는 청중도 보였으며, 일부 티켓이 3배 가격의 암표로 거래돼 음악당 직원들을 곤혹케 했다. 공연 뒤 상경하는 관객들을 위해 고속버스가 증편됐고, 그럼에도 교통편을 구하지 못한 청중들은 의기투합해 전세버스를 2대나 대절하는 진풍경을 보였다. ‘조성진 임팩트’는 분명 태풍보다 강력했다.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숙명여대 겸임교수>